남해안길

남해안 길 12. 남파랑 28.29코스 (통영선촌항-세병관-해저터널).

산경표 2022. 3. 11. 11:56

남해안 길 12. 남파랑 28.29코스 (통영선촌항-세병관-해저터널). 

 

 

◈ 일시 : 2022. 03. 02 (수). 3차  셋째 날.  1~11도로  봄날같이 덥다.

 

◈ 구간 거리 및 소요시간 : 10.2 km. 7시간 55분.

 

◈ 동행 : 아내.

 

◈ 지도.

 

◈ 트랙.

 

남해안12-1(선촌 -도남유람선터미널)2022-03-02 0630__20220302_0630.gpx
0.08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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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 정리.

 

06 : 19. 문화마당 정류소에서 456번버스타고(\1450*2).

06 : 29. 선촌마을 정류소 도착. 선촌 미월-미늘 표지석.먼동이 트는 거제도를 바라보고  해안길을 따라간다.

06 : 38. 통영RCE세자트라숲 가는길로. - 남파랑길 28코스 안내판.

06 : 41. 통영RCE세자트라숲.  산책로 안내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06 ; 56. 능선위.이순신공원 1km. 토영이야~길.

07 ; 04. 일출을 보고간다.

07 ; 10. 어제 갔던 통영유람선터미널과 충무마리나리조트가 바다 건너로 보인다.

07 : 25. 이순신공원. 이순신장군동상과 승전도. 한산대첩도.한산도와 미륵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07 : 56. 동항.멸치수협.

08 : 04. 디피랑 198계단을 올라간다.

08 : 24. 전망대. 통영시내와 미륵산. 한산도를 둘러본다.

08 : 34. 정자를 지나 남망산(70.3m)정상. 여기있는 이순신장군동상은 너무 조잡하다.

08 : 47. 남망산조각공원.

08 ; 54. 통영시민문화회관.

09 : 01. 통영항. 남파랑 29시점 안내판. 통영명물 수타꿀빵을 맛보고

09 : 19. 우측 동피랑길로 들어서고

09 : 24. 동피랑 마을길 안내도.토영이야~길.

09 ; 26. 도자기로 만든쉼터.

09 : 43.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로 올라간 동포루. 통영시가와 북포루 서포루가 건너다 보인다.

10 :08. 중앙시장.

10 ; 22. 사적 402호인 삼도수군통제영.국보 305호인 세병관.관람료 개인 \3000. 경로는 무료.
          한바퀴 돌아보고 산중턱의 도로따라

10 ; 56. 삼거리 고개. 좌측으로 가면 바로 서포루이나 충렬사를 가려면 직진해 내려간다.

11 : 12. 사적 236호인 충렬사. 이순신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11 ; 18. 큰 도로에서 좌측길로 올라간다. 서피랑 이야기판.
           서피랑 99계단이나 피아노계단은 좀더 내려가서 좌측인데 남파랑길은 여기서 들어간다.

11 : 23. 서피랑터널. 서피랑공원. 좌측으로 가면 좀전에 지나간 삼거리다. 우측으로 올라간다.

11 : 34. 서포루.세병관과 북포루. 동포루와남망산, 통영항.미륵산조망이 좋다.

11 : 48. 서호시장. 한바퀴 돌아보고 먹을곳찾아 이리저리돌아

12 : 05/46. 통영항앞의 풍만복국집에서 참복지리(\15000*2)로 점심.

12 : 51. 통영항여객터미널.

13 : 12. 해저터널.1932년 동양 최초의 해저구조물로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해수면아래10m.

 

남해안길 12일은 여기까지이고
해저터널을 지나 미륵도 2일로 이어간다.

 

06 : 19. 문화마당 정류소에서 456번버스타고(\1450*2).

456번버스는 경상대 해양과학대에서 오촌가는 버스다.

 

06 : 29. 선촌마을 정류소 도착. 선촌 미월-미늘 표지석.먼동이 트는 거제도를 바라보고  해안길을 따라간다.

바다 건너는 거제도 둔덕면 술역리다.

 

잠시후에 넘어갈 통영RCE세자트라숲.

 

지난번에 지나온 아랫미월.

선촌 미월-미늘 표지석.

 

06 : 38. 통영RCE세자트라숲 가는길로. - 남파랑길 28코스 안내판.

06 : 41. 통영RCE세자트라숲.  산책로 안내판.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통영RCE세자트라숲은?

뒤 돌아 본 선촌항.

뒤 돌아 본 선촌항과 바다 건너 거제도 별학산.

 

 

06 ; 56. 능선위.이순신공원 1km. 토영이야~길.

 

07 ; 04. 일출을 보고간다.

 

07 ; 10. 어제 갔던 통영유람선터미널과 충무마리나리조트가 바다 건너로 보인다.

충무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미륵산(우뒤).

 

고동산(좌)-한산도-죽도

이순신공원.

이순신공원(구, 한산대첩기념공원)은 통영시의 대표적인 성지로, 1592년 8월 14일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해상주도권을 다툰 해전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함으로써 해상주도권을 장악하여 식량보급로를 확보하고 수륙병진작전을 전개하려던 일본 수군의 전의를 상실케한 임란의 최대승첩지인 이곳이다. 이순신공원은 성웅 이충무공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거룩한 호국의 얼과 높은 뜻을 선양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곳이다.

 

07 : 25. 이순신공원. 이순신장군동상과 승전도. 한산대첩도.한산도와 미륵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하면 살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32전 32승 승전도.
임진왜란때 조선 수군이 해전을 벌여 승리한곳을 순서대로 표시했다.
해전장소. 날짜와 전과. 주둔했던 수영 첨사와 만호등이 자세히 적어놨다.

충무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미륵산(뒤)-동항방파제.

보물 326호인 충무공 장검은 길이 197.5cm의 2자루의 탈로 무게 4kg.

  • 길이 196.8 / 197.2이순신이 1594년 4월 한산도 진중(陣中)에 있을 때 만든 칼이다. 전장에서 실제로 쓴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칼날에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친필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고, 칼자루 속에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三尺誓天 山河動色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길이가 무려 197.5센티미터로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두 자루 칼이다.

칼자루 속 슴베에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이 새겨져 있어 이 칼을 만든 이와 시기를 알 수 있다.
1594년 4월은 전란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때였다.
이때 명나라와 일본 간에 강화교섭이 진행되고 있어 전쟁은 소강상태에 있었지만 전염병과 기근으로 진중에서는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일본군과 큰 전투 없이 지루한 대치 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다시 각성하고자 이 두 자루 칼에 그 뜻을 새긴 것이리라.

칼자루는 길이가 60센티미터에 달하며 두께도 직경이 5센티미터에 가까울 만큼 길고 크다.
나무로 만들었으며 붉은 옻칠[朱漆]을 한 어피로 덮고 그 위에 다시 검은 옻칠[黑漆]을 한 가죽끈을 X자 모양으로 묶었다.
칼자루의 끝, 즉 칼머리에 덧댄 뒷매기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금 좁아드는 원통형이다.
위쪽에는 빗금무늬를 은입사하였고, 옆면에는 모란을 상감하였다.
칼자루와 코등이가 만나는 앞매기는 칼자루를 보강하고 슴베가 칼자루에 단단히 고정되도록 해주는 부분인데 기하학적 무늬를 상감하였다.
칼자루와 칼날 사이에 끼워서 손을 보호하도록 만든 코등이는 국화 문양이 투각되어 있는데 두 개의 구멍이 있다.
칼날의 길이는 137.5센티미터이며 전체적으로 휘임각이 큰 편이며 단면은 육각형이다.
칼등 쪽에 칼날 중간까지 하나는 폭이 넓고 다른 하나는 좁은 골[혈조血槽]이 위아래로 나란히 하나씩 파져 있다. 혈조 아래에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구절이 대구로 새겨져 황동으로 입사되어 있다.
칼집은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어피를 씌운 다음 다시 검은 옻칠을 하였다.
칼집끝은 모란을 은상감한 무쇠로 감쌌으며 칼집입에도 기하학 문양을 은입사하였다.
칼집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가운데에 두 개의 가락지를 끼웠다.
두 가락지를 걸쳐 칼집 윗몸에 길게 철을 덧씌우고 아래 위 두 가락지 위에 칼집고리를 달고 칼집끈을 묶었다.
칼집끈은 무거운 장검을 매달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는데 두터운 소가죽 위에 삼베를 대고 다시 사슴가죽을 씌운 것이다.

2미터에 달하는 길이나 4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로 보아서 실제 사용한 칼로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두 자루를 만들어 댓구를 이루는 검명을 새긴 것으로 보아 통제사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의장용이거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방에 걸어두고 보았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날카로운 칼에서 나오는 본래의 엄정함에 더해 이순신의 마음이 아로새겨진 검명이 겹쳐 이 두 자루 장검은 묘한 울림으로 오늘도 그 앞에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들어 두고 있다.

 

충무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미륵산(준뒤)-동항방파제(우).

한산대첩 장소.

1592년(선조 25) 5월 29일부터 제2차로 출동한 이순신의 수군은 6월 10일까지 사천 선창(泗川船艙)·당포(唐浦)·당항포(唐項浦)·율포해전(栗浦海戰) 등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육지에서는 계속 패전의 소식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되자 적은 해상에서도 다시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여 가덕도(加德島)와 거제도(巨濟島) 부근에서 적선이 10여 척에서 30여 척까지 떼를 지어 출몰하면서 육군과 호응하고 있었다.

이런 보고를 접한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은 우수사(右水使) 이억기(李億祺)와 연락하여 재차 출동을 결정하였다. 이때 일본은 해상에서의 패전을 만회하기 위하여 병력을 증강하였다.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제1진은 70여 척을 거느리고 웅천(熊川) 방면에서 출동하였고,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의 제2진은 40여 척을, 제3진의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도 많은 병선을 이끌고 합세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7월 6일 이억기와 더불어 49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출발, 노량(露梁)에 이르러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의 함선 7척과 합세하였다. 7일 저녁 조선 함대가 고성(固城) 땅 당포에 이르렀을 때 적함 대·중·소 70여 척이 견내량(見乃梁)에 들어갔다는 정보에 접하고 이튿날 전략상 유리한 한산도 앞바다로 적을 유인할 작전을 세웠다.

한산도는 거제도와 고성 사이에 있어 사방으로 헤엄쳐나갈 길도 없고, 적이 궁지에 몰려 상륙한다 해도 굶어죽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이리하여 먼저 판옥선(板屋船) 5, 6척으로 하여금 적의 선봉을 쫓아가서 급습, 이에 적선이 일시에 쫓아나오자 아군 함선은 거짓 후퇴를 하며 적을 유인하였다.

아군은 예정대로 한산도 앞바다에 이르자 미리 약속한 신호에 따라 모든 배가 일시에 북을 울리며 뱃길을 돌리고, 호각을 불면서 학익진(鶴翼陣)을 펴고 일제히 왜군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거북선의 지자총통(地字銃筒)·현자총통(玄字銃筒)·승자총통(勝字銃筒) 등 모든 화력을 한꺼번에 쏘아 적선을 격파하고 불사른 것만도 66척이나 되었다.

적의 목을 잘라 온 것이 86급(級), 기타 물에 빠지거나 찔려죽은 수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며, 한산도로 도망친 400여 명은 군량이 없이 13일간을 굶주리다가 겨우 탈출하였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때의 3대첩(大捷)의 하나로, 그 결과 일본 수군은 전멸하였고, 이순신은 그 공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 이억기와 원균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서(陞敍)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산도대첩 [閑山島大捷] (두산백과)

뒤돌아 보고

정자.

충무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미륵산(뒤)-동항방파제.

07 : 36. 동항방파제

 

07 : 56. 동항.멸치수협

동항. 좌측산이 남망산이고 좌측끝에 198계단이 보인다.

 

동항.

 

08 : 04. 디피랑 198계단을 올라간다.

남망산 오름길.

뒤 돌아 본 이순신공원과 동항.

계단을 올라 좌측으로.

 

08 : 24. 전망대. 통영시내와 미륵산. 한산도를 둘러본다.

전장대에서 한산도.

전장대에서 동항과 이순신공원.

전장대에서 미륵산(좌)-봉평동(우)

전망대에서 마리나리조트(좌)통영유람선터미널(중).

전장대에서 고동산-한산도

우측으로 가면 

이런 출렁다리도 있고

남망산정자.

 

08 : 34. 정자를 지나 남망산(70.3m)정상. 여기있는 이순신장군동상은 너무 조잡하다.

남망산(70.3m)정상.

이순신장군동상은 너무 조잡하다.

 

디피랑길로 올라가면 .

디지털 테마파크 디피랑에서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비밀공방’

 

디피랑은 바다가 아름다운 통영의 강구안 동쪽 남망산조각공원에 조성된 디지털 테마파크다. 빛의 아름다움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산책로를 따라 걸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통영의 대표 여행지 동피랑과 서피랑은 2년마다 벽화를 바꾼다고 한다. 디피랑은 ‘과연 동피랑과 서피랑의 옛 벽화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지워진 벽화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곳, 디피랑이다.

돌기둥을 세워 조성한 ‘반짝이 숲’

2020년 10월 16일 문을 연 디피랑에는 1.5km 산책로에 15개 테마 공간이 있다. ‘이상한 발자국’부터 ‘잊혀진 문’까지 이어지는 도입부를 지나면 ‘반짝이 숲’ ‘오래된 동백나무’ ‘비밀공방’ 등을 거쳐 ‘디피랑’에 닿는다. 여기서 지워진 옛 벽화를 만나고 ‘숲속 출구’를 통해 아쉬운 작별을 한다. 단순한 야간 경관 관람이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밤이면 빛으로 물드는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산조각공원 입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통영시민문화회관을 만난다. 통영시민문화회관 벽면에 화려한 영상을 입힌 첫 번째 공간 ‘생명의 벽’이다. 통영 자개 문양을 비롯해 다양한 영상이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티켓을 판매하는 ‘디피랑 산장’이다. 이곳에서 라이트 볼도 판매하는데,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테마 공간 곳곳에 있는 구멍에 라이트 볼을 넣으면 새로운 영상이 나온다.

통영 문화동 벅수가 지키고 선 ‘잊혀진 문’

‘이상한 발자국’ ‘캠프파이어’ ‘잊혀진 문’은 디피랑의 도입부로,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길을 따라 야광 페인트로 형형색색 흔적을 남긴 ‘이상한 발자국’, 디피랑으로 가는 마지막 준비 공간인 ‘캠프파이어’를 지나 본격적으로 탐험을 떠나는 ‘잊혀진 문’에 다다른다. 어두컴컴한 숲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만난 디피랑의 수호신 피랑이가 문을 열어준다. 통영 문화동 벅수(국가민속문화재 7호)가 그 앞을 지키고 있다.

‘오래된 동백나무’ 구멍에 라이트 볼을 넣는 모습

디피랑에서 인기 있는 곳은 ‘반짝이 숲’ ‘오래된 동백나무’ ‘비밀공방’ 등이다. ‘반짝이 숲’은 광섬유와 레이저, 프리즘 볼라드를 이용해 환상적인 길을 연출한다. ‘오래된 동백나무’는 나무 위를 지나는 숲하늘길 길목에 있다. 거대한 동백나무 모형에 매핑 쇼가 펼쳐지고, 갈라진 나무 틈새로 라이트 볼을 넣으면 특별한 영상이 보인다. 거대한 동백나무가 화려하게 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비밀공방’의 실감 미디어 쇼

시원한 ‘신비폭포’를 지나면 디피랑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는 ‘비밀공방’에 이른다. 배드민턴장으로 쓰이던 곳인데, 프로젝터 18대를 이용해 5면 매핑으로 에워싸인 듯한 실감 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통영 나전칠기와 통영 출신 유명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한 영상이 이어진다. 영상이 바뀔 때마다 감탄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공간이다.

관람객의 목소리가 산울림처럼 들리는 ‘메아리마을’

마이크 시스템을 통해 관람객의 목소리가 산울림처럼 들리게 한 ‘메아리마을’, 무빙 라이트 LED 바와 포그 머신을 이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빛의 오케스트라’를 지나면 드디어 ‘디피랑’에 이른다. 절벽을 연상케 하는 벽체 구조물에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디피랑’ 벽체 구조물에 펼쳐지는 미디어 쇼

라이트 볼을 구멍에 넣으면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지워진 벽화가 드러나, 움직이는 벽화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30분에 한 번씩 특별 영상이 이벤트처럼 나온다. 디피랑의 여운도 잠시, ‘숲속 출구’를 지나면 긴 여정이 끝난다. 헤어지는 공간 끝자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 보고 싶을 거야.” 지금까지 여정이 떠오르며 짙은 아쉬움이 느껴지고, 디피랑 탐험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여행의 목적지, ‘디피랑’

디피랑 운영 시간은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공휴일 다음 날 휴장), 입장료는 어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2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통영케이블카, 통영욕지섬모노레일, 통영어드벤처타워 당일 입장권을 소지하면 50% 할인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랑이와 함께 아름다운 밤을 여행하다, 통영 디피랑 - 추천! 가볼 만한 곳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08 : 47. 남망산조각공원.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

 

 

08 ; 54. 통영시민문화회관.

남망산조각공원과 미륵산.

바다의 빛을 곱게 담고 있는 아름다운 통영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자 국내 작가들을 비롯하여 세계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 15점을 전시하고 있는 조각공원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일본작가인 이토 다카미치의 ‘4개의 움직이는 풍경’을 비롯하여, 스웨덴 조각가인 에릭 디트망의 ‘최고의 순간을 위해 멈춰진 기계’와 우리나라 작가인 심문섭의 ‘은유-출항지’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산책 중 생각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여러 작품 중 프랑스 작가인 장 피에르 레이노의 ‘분재’는 직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라 한눈에 주제를 알아볼 수 있으며, 또 동양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 모두 한 번씩 바라보는 작품이다. 공원 중간 소나무 한 그루 뒤로 통영의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에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좌측끝 멀리 충무교-서항 통영여객터미널(좌)-통영항(우). 서포루.

통영항(중)과 뒤로 서포루.

건설중인 홍남동-남망산을 잇는 다리.

 

09 : 01. 통영항. 남파랑 29시점 안내판. 통영명물 수타꿀빵을 맛보고

사진 중앙 앞쪽에 남파랑길 안내판.

남파랑 29시점 안내판.

1개 \1000.

 

09 : 19. 우측 동피랑길로 들어서고

 

09 : 24. 동피랑 마을길 안내도.토영이야~길.

확대해 본 동피랑마을 안내판.

통영시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에 위치한 이 마을의 이름은 '동피랑'으로, '동쪽 벼랑' (비탈의 지역 사투리 '비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피랑 마을 위에서 강구항을 볼 수 있으며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에 있는 담벼락마다 벽화가 그려져있다. 통영시 정량동태평동 일대의 산비탈 마을로 재개발 계획이 수차례 변경 수정 되어 왔다.[2] 벽화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마을 보존 여론이 형성되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 집 3채만 헐고 철거방침을 철회하였다. 이후 철거 대상이었던 마을은 벽화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게 되었다.[1] 서민들의 오랜 삶터로 저소득층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언덕마을에서 바라보는 해안도시 특유의 아름다운 정경을 가지고 있다.[2] 2014년 7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로부터 지속가능발전의 모범적사례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 인증을 획득 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통영시와 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동피랑 벽화마을조성 초기 당시 진행되었던 '동피랑 사생대회'를 개최했다.

09 ; 26. 도자기로 만든쉼터.

뒤 돌아 본 통영항과 뒤로 미륵산.

진짜 사람인줄 알았다.

가끔 찻집도 있고 

 

09 : 43.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로 올라간 동포루. 통영시가와 북포루 서포루가 건너다 보인다.

동포루.

 

동포루에서 본 문화회관(좌)- 통영항의 구름다리-미륵산.

 

동포루에서 본 북포루와 세병관(좌측끝).

 

동포루에서 본 서포루(좌)와 세병관(우). 충렬사는 가운데 고개 넘어에.

 

동포루

동피랑끝.

 

10 :08. 중앙시장.

세병관입구.

 

10 ; 22. 사적 402호인 삼도수군통제영.국보 305호인 세병관.관람료 개인 \3000. 경로는 무료.
          한바퀴 돌아보고 산중턱의 도로따라

망일루. 사진 우측에 매표소.

 

국보 305호인 세병관.

‘하늘의 은하수를 가져다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세병관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산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육지인 통영으로 옮겨오면서 지어진 객사건물이다. 세병관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인 두보의 시 「세병마」에서 가져온 것으로, 성인 남자의 키보다도 더 큰 현판의 글씨를 보고 있자면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경상, 전라, 충청도에 각각 수군절도사를 두어 지휘하게 하였으나, 전쟁이 일어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해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삼도수군통제사로 하여금 조선의 수군을 담당하게 하는데 처음으로 임명된 이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전쟁 후에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던 통제영이 통영에 자리 잡은 것은 선조 36년(1603년)으로, 6대 통제사인 이경준에 의하여 세병관을 비롯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 이후 통영은 삼도수군의 중심지로 통제영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지금도 통영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나전칠기는 그때 통제영에 물건을 댈 요량으로 만들어졌던 12공방 중 한 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망일루를 거쳐 삼문인 지과문을 지나면 세병관이 나온다. 여수의 진남관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목조 건물로 작지 않은 크기를 자랑한다. 바깥으로 통로가 만들어져 있고 안으로는 분합문이 들려져 있다. 들여다보면 내부에 한층 더 높이 만들어진 작은 방을 볼 수 있는데,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다고 한다.

지과문 옆의 2층 정자인 수항루는 통영시내에 있던 것이었으나 근래에 이곳으로 옮겨온 건물로 이름 그대로 왜장에게 항복문서를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병관 앞으로 이경준의 치적을 담은 두룡포기사비를 비롯해 이곳을 거쳐간 통제사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세병관 주위로 옛 통제영지 복원 공사가 2013년에 완료되어 12공방, 백화당등의 건물이 복원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병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기삽석통.

통제영 창건 당시 심어졌다는 전해지는 둘레 5m에 수령 400년 이상 되는 느티나무.

 

건물들이 많다. 이 샛길로 중턱의 2차로로 올라가서 충렬사로 간다.

통제사 비군.

두룡포기사비.

 

10 ; 56. 삼거리 고개. 좌측으로 가면 바로 서포루이나 충렬사를 가려면 직진해 내려간다.

 

11 : 12. 사적 236호인 충렬사. 이순신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충렬사.

사적 제236호. 1973년 지정. 면적은 9,049m2이다. 이충무공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다. 1606년(선조 39) 제7대 통제사 이운룡(雲龍)이 왕명으로 세웠으며, 1663년(현종 4) 사액(賜額)되었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 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충렬사는 본전(本殿)과 정문(正門) ·중문(中門) ·외삼문·동서재·경충재·숭무당·강한루·유물전시관 등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81년(숙종 7)에 제60대 민섬 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형 통제사 비각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명나라 만력제가 내린 8가지의 선물인 명조팔사품(보물 440호)과 정조가 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1질을 통영 충렬사에 내리면서 직접 지어 내린 제문 등이 전시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 충렬사 [統營 忠烈祠] (두산백과)

강한루.

강한루

 

東入西出 들어갈땐 사진 우측문으로 .나올땐 사진 좌측문으로

 

통영충렬묘비

 

충렬사

충렬사 내부.이순신장군 영정과 방명록,헌성금함.

 

 

 

11 ; 18. 큰 도로에서 좌측길로 올라간다. 서피랑 이야기판.
           서피랑 99계단이나 피아노계단은 좀더 내려가서 좌측인데 남파랑길은 여기서 들어간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과 마주보고 있는 서피랑(서쪽의 비탈)이 '제2의 동피랑'을 꿈꾸고 있다. 서피랑을 걷다보면 윤이상과함께학교가는길, 서피랑문학동네, 99계단과 음악정원, 보이소 반갑습니데이! 인사거리, 뚝지먼당 98계단, 피아노계단 등 서피랑의 숨은 보물길을 만나게 된다. 서피랑은 동피랑과 함께 지역 내 대표적인 달동네로, 해방 이후 집장촌이 형성되면서 지역민조차 찾기를 꺼리는 천덕꾸러기 동네로 전락했다. 2000년대 들어 집장촌은 자연스레 정비됐지만 마을은 이미 활력을 잃은 상태였다. 2007년 동피랑이 철거마을에서 벽화마을로 거듭날 때까지, 서피랑은 어떠한 변신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200m 길을 '인사하는 거리'로 지정하면서 활력을 점차 찾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일에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집장촌을 오르내리던 서피랑 99계단은 벽화와 조형물이 조성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크고 작은 예술품이 마을 곳곳에 내걸렸다. 99계단은 첫 계단부터 끝까지 1부터 99번의 숫자가 계단마다 한 켠에 작품으로 그려진다. 단정하게 혹은 비뚤게, 더러는 뒤집어진 채, 선 걸음으로 넉넉하게 읽을만한 크기로 씌어지고 있다. 그런데 시작 계단은 99부터 맨꼭대기 1까지로 거꾸로 새겨진다. 한계단 마다 한 숫자씩 빼면서 오르게 하는 이유는 안그래도 힘든 인생길, 숫자 하나씩의 무게를 비워가며, 줄여가며 오르다보면 힘도 덜 든다는 나름의 의미다. 가위 바위 보를 하든, 그저 묵묵히 걸어 올라보든 꽉 찬 수, 9가 쌍으로 만나는 아흔 아홉계단을 걸어 올라가 볼 일이다. 나머지 하나는 본인이 채우게 될 듯하다.
역사 유적을 스토리텔링화한 마을만들기 사업도 병행했다. 서피랑 아랫마을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출생지이자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배경지로 서문고개, 간창골, 명정샘 등이 등장하는 문학 동네인 것을 활용했다. '박경리 문학 동네(서피랑) 골목길 투어'를 수시로 개최, 전국 문학인들이 몰려들면서 서피랑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했다. 행정자치부의 '2015 희망마을 만들기사업'에도 선정돼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활용한 '윤이상 학교 가는 길'과 서피랑 내 가장 가파른 서호벼락당에 피아노 계단도 조성했다. 피아노 계단은 기존 140개 계단을 활용해 '높은음자리표'를 형상화하고 이 중 24개 계단은 실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건반과 음악정원도 함께 조성되었다.서피랑 정상에 위치한 서포루에서는 통제영과 통영의 중심항인 강구안, 맞은편 동피랑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비경을 자랑한다. 서포루는 전국 사진작가가 선정한 사진찍기 명소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피랑 마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11 : 23. 서피랑터널. 서피랑공원. 좌측으로 가면 좀전에 지나간 삼거리다. 우측으로 올라간다.

 

 

11 : 34. 서포루.세병관과 북포루. 동포루와남망산, 통영항.미륵산조망이 좋다.

서포루.

 

서포루에서 성항과 미륵산.

서포루에서 북포루와 세병관.

 

서포루에서 통영여객터미널.

 

서포루에서 마리나리조트(맨 좌측와 통영국제음악당-미륵산

서포루에서 남망산-문화회관-강구안(통영항)

남망산-강구안.

11 : 48. 서호시장. 한바퀴 돌아보고 먹을곳찾아 이리저리돌아

서호시장.

 

12 : 05/46. 통영항앞의 풍만복국집에서 참복지리(\15000*2)로 점심.

 

 

12 : 51. 통영항여객터미널.

우측으로

13 : 12. 해저터널.1932년 동양 최초의 해저구조물로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해수면아래10m.

해저터널.

통영해저터널은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해저터널이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1년 4개월에 걸쳐 만들어진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너비 5m, 높이 3.5m이다. 그 전의 미륵도는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때는 도보로 왕래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어민의 이주가 늘면서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해저터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양쪽 바다를 막고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을 만든 것으로 터널 입구에 쓰여 있는 '용문달양(龍門達陽)'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문'이라는 뜻이다. 통영시내 당동 쪽 터널 입구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터널 내부는 포장된 경사로이며 약 483m 길이이다. 안쪽에 통영 관광 명소들에 대한 소개 판넬이 전시되어 있다. 콘크리트 구조로 약간 음침한 분위기이지만, 우리 역사의 애환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저터널(통영)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남해안길 12일은 여기까지이고
해저터널을 지나 미륵도 2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