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지맥 4구간(사동-승반산(升盤山.58.5m)-복지삼거리-만경읍).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에서 본 백산저수지.
이 저수지는 오후에 보게될 능제와 같이 산이나 계곡에서 내려온 물을 받아 저수하는 저수지가 아니고
섬진강의 물을 인공으로 끌어올려 저수하는 인공저수지다.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에서 본 백산저수지와 가야할 맥길.
우측 도로를 따라 저끝 복지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 좌측끝에 보이는 높은 굴뚝있는 곳으로 갈것이다.
◈ 산행코소와 거리 및 소요시간. 도상거리 20km + 1.8km. 6시간 20분.
716번도로 사동마을입구-30.4m 삼각점-점촌삼거리-순동공단입구 삼거리-호남선철로 농원육교-순동공단앞-김제온천삼거리-63m봉-
승반산(升盤山.58.5m)-23번국도-두악산(斗岳山.57m) 관망대-복지삼거리-702번도로-33.9m 삼각점-대동공단-우복,조산농장입구-
대동1육교-서해안고속도로-29번도로-남산서원입구-27.8m 삼각점봉-만경삼거리-만경여중고앞-동산(東山.59m)-장등산(長登山.42.4m)
◈ 일시 : 2010. 1. 26(화).
◈ 날씨 :날씨가 확풀려 봄날같이 따뜻함.
◈ 인원 : 맥사랑 동호회원 19명.
◈ 지도 :영진 5만지도 P373.374 김제익산.P397.P398김제정읍.1/25000.김제.만경.
모악지맥 4구간(사동-승반산(升盤山.58.5m)-복지삼거리-만경읍).지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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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지맥 4구간(사동-승반산(升盤山.58.5m)-복지삼거리-만경읍).지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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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지맥 4구간(사동-승반산(升盤山.58.5m)-복지삼거리-만경읍).지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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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정리.10 : 05~ 16 : 25. 6시간 20분.
08 :30. 천안에서 합류.
10 : 05. 전주-김제 716번도로 사동마을입구의 청운주유소(불노사거리 서쪽 300m)에서 산행시작.
10 : 16. 30.4m 삼각점(이리 310.1996재설).만남주유소뒤.상리버스정류장앞.
10 : 42. 점촌 사거리.우측으로 용지면 진입도로.점촌사거리 버스정류장.
10 :52. 좌측으로 한국 폴리텍 V 대학.
10 : 59. 순동산업단지입구 삼거리.우측 산업단지도로를 따라감.
11 : 00. 호남선철로 농원육교(김제고가).
11 : 04. 순동산업단지.
11 : 15. 김제온천 삼거리.우측은 스파힐스,좌측은 김제 애농진입도로.
11 : 17. 좌측 세멘길로 들어섬.
11 : 24/29. 63m봉.좌측으로 내려감.
11 : 34. 흥복사뒤 수렛길안부.
11 : 41/44. 승반산(升盤山.58.5m).삼각점(국방부 대삼각점).직진해 넘어감.
11 : 51. 삼수동 삼거리.좌측 23번도로를 건너 금강주유소앞 도로를 따라 올라감.
11 : 58. 은빛가든앞 삼거리.좌측으로 들어서며 바로 또 우측 관망대도로를 따라감.
12 : 07/25.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관망대 옥상에 삼각점.김제 만경평야가 다 내려다보임.점심.
12 : 28. 팔봉도예앞 삼거리.좌측 24번군도로를 따라감.
12 : 48. 복지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 702번 도로로 들어섬.
12 : 51. 43.9m삼각점은 글자판독 어려움.
13 : 05. 백산 사거리.좌측은 김제 우측은 대야,청야가는 712번도로.송이농산간판.
13 : 18. 중상(中尙)마을입구.
13 : 20. 산치사거리 300m앞 도로표지판에서 좌측 인삼밭옆길로 감.
13 : 28. 인삼밭을 건너간 5번군도에서 좌측으로 도로 따라감.
13 : 32. 노란물통뒤 35.1m삼각점.글자판독 어려움.
13 : 37. 대동산업단지.
13 : 44. 소동마을입구. 점멸등.
13 : 50. 우복농장,조산농장입구.5번군도 큰길 버리고 우측 세멘길로 들어섬. 주의지역.
14 : 04. 대동1육교(김제-동군산IC를잇는 4차선도로위).
14 : 09. 풍천임씨종산입구.Y자 갈림길. 맥은 좌측이고 두길은 잠시후 다시만남.
14 : 16. 두길이 만나서 서쪽이동통신 중계탑뒤로 가야하나 고속도로를 건너기위해 북쪽 대동2육교로 돌아감.
14 : 18. 서해안 고속도로 대동2육교.육교를 건너서는 직진않고 바로 좌측길을 따라감.주의지역.
14 : 31. 23번도로 다복 사거리.우측으로 23번도로를 따라감.대석리 버스정류장.
14 : 45. 남산서원,용화사입구.
14 : 50. 27.5m 삼각점.묘라정류장앞에서 우측 묘지길로 오르는게 편함.
14 : 58. 미림조경,성덕가압장앞.성덕산갈림길.
14 : 59. 만경삼거리.좌측에서 온 711번도로를 만남.삼복주유소.건너편에 삼거리휴게소와 주유소.
15 : 14. 만경사거리.우측은 백산,150m앞 좌측길은 진봉,심포항가는길.
15 : 18/40. 만경여중고앞.좌측은 진봉,심포항 갈림길.우측은 동산오름길.<차와 동료들이 없어 다시 한바퀴돔>
15 : 47/49. 동산(東山.59m)앞봉.전망대와 중계탑.모자상. 쉼터.능제조망.실질적인 동산임.
15 : 53. 지도상의 동산(東山.59m).작은 암자뒷봉. 좌측에 영광아파트 102동.
16 : 10. 장등산(長登山.42.4m).
16 : 25. 만경농공단지, 영광 APT앞에서 산행종료.
18 : 00. 만경읍내서 저녁먹고 출발.
19 : 35. 천안도착.
◈ 산행후기.
시간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는데 전화가 온다. 차가 도착했단다.
웬 일이여? 벌써오게.숨을 할딱 거리고 뛰어간다.오늘부턴 상일동을 안 거치고 천호동에서 바로오니 25분은 빨라 진단다.
서전주 IC에서 나가 전주에서 김제가는 716번 도로를 타고이서를 지나 애통사거리를지나 지난번에 산행을 마친
사동마을입구인 청운주유소에서 모악지맥 네 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10 : 05. 전주-김제 716번도로 사동마을입구의 청운주유소.
불노사거리300m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을 뒤돌아보고 김제쪽으로 716번도로를 따라간다.
솔밭산장,제일토기를 지나 도로건너편에 SK주유소입간판뒤 작은 솔밭에 30.4m 삼각점이 있을듯싶어 내가 대표로 확인차 올라가봤다.
10 : 05. 전주-김제 716번도로 사동마을입구의 청운주유소에서 산행시작.
10 : 16. 30.4m 삼각점(이리 310.1996재설).만남주유소뒤.상리버스정류장.
솔밭속에 깨끗하게 관리된 30.4m 삼각점(이리 310.1996재설)이 있다.바로 옆이 만남주유소 담벼락이다.
내려와 만남주유소앞 도로를 건너면 상리 버스정류장이있고 조금 가면구도로가 우측으로 나오고 구도로로 들어서면 인삼밭이 우측에 있다.
10 : 16. 30.4m 삼각점(이리 310.1996재설).
우측 만남주유소뒤에있고 앞은 상리버스정류장이다.
10 : 42. 점촌 사거리.우측으로 용지면 진입도로.점촌사거리 버스정류장.
구도로와 신도로가 다시 만날즈음 큼직한 돌로만든 순흥안공 松菴敬智之世阡비가 있다.저안쪽에 송암 안경지의 묘가 있는 모양이다.
그 학당서원은 조선 효종5년(1654)에 창건, 고종 6년(1869)에 철폐되었던 것을 1971년에 다시 지엇는데,
이사당안에 송암안경지가 청은 안처,장절공 정 감, 반매당 안 징, 병사공 안위, 죽헌 안 철, 우후공 월명 나신도, 월암 나팔기,
승지 안대규 등과함께 모셔져 있단다.
구도로와 신도로가 다시 만나면 무수버스정류장(10 :27)이 나오고 좀더가면 효정정류장을 지난다(10 :34).
잠시후에 우측으로 용지면으로 들어가는 점촌삼거리를 지난다.
구도로와 신도로가 다시 만나는 무수버스정류장(10 :27)과
순흥안공 松菴敬智之世阡비.
10 : 42. 점촌 사거리.
10 : 59. 순동산업단지입구 삼거리.
점촌사거리를 지나 조선레미콘,신일자동차 공업사,신일 폐차장을지나면 좌측으로 한국 폴라텍 V 대학과 뒤로 모악산이 보이고
순동산업단지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 산업단지도로를 따라간다.
우리가 온 전주-김제도로는 콩쥐팥쥐로이고 산업단지로 가는길은 아라랑로란다.
한국 폴라텍 V 대학.
10 : 59. 순동산업단지입구 삼거리.
우측 산업단지 도로를 따라간다.
11 : 04. 순동산업단지.
호남선철로위의 농원육교를 건넌다. 1/25000은 농원육교를 김제고가라 적고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순동산업단지가 나오고 좀더가면 좌측에 대형하우스단지가 나오고 그뒤로 63m봉이 보인다.
하우스단지는 참샘이란회사로 피만고추를 재배하여 일본으로 수출하는 회사인 모양이고 저앞에 김제온천 삼거리가 보인다.
호남선철로위의 농원육교를 건너가면 순동산업단지다.
1/25000은 농원육교를 김제고가라 적고 있다.
호남선철로위의 농원육교.
11 : 04. 순동산업단지.
11 : 15. 김제온천 삼거리.
우측은 스파힐스,좌측은 김제 애농진입도로가 있는데 우측 김제온천쪽 표지판은 글자를 지운것이 영업을 않는 모양이다.
앞사람들은 모두 좌측 도로를 따라 들어갔지만 나는 앞쪽이 좀더 높아 높은곳에서 맥따라 들어갈려고앞쪽으로가봤다.
역시 생각한 대로 좌측으로 뚜렷한 능선이 살아있고 세멘트 수렛길이 맥따라 나있다.
11 : 15. 김제온천 삼거리.
우측은 스파힐스 CC ,좌측은 김제 애농도로인데 맥은 조금 더 앞으로 나간 언덕에서 좌측으로 난 수렛길이다.
11 : 24/29. 63m봉.좌측으로 내려감.
수렛길따라 좌측으로 들어가면 우측 1시방향에 63봉이 보이고 그 아랫쪽엔 문중묘들이 여럿있고 밑엔 큰 제실도 보인다.
좌측도로따라 갔던 일행들이 밭을 가로질러 건너오고 수렛길이 끝나 산으로들어 잠시 잡목을 헤치고 올라가선 우측으로 좀 올라서면 63m봉이다.
빼곡한 솔밭속에내림길도 안보여서 혹시 뒤쪽으로 길이있나싶어 다시 돌아가서 찾아봐도 길이없어 다시 63m봉에 올라와서 좌측으로 내려갔다.
조금 내려오면 빼곡한 대나무밭이라 대나무밭 우측으로 나가면 시커먼 차광망이 쳐져있고 뚫어진 틈으로 나와보니 과목을 베어낸 과수원이다.
11 : 24/29. 63m봉.
사진 우측끝,작은사진 좌측끝이 63m봉으로 오늘 산행중 최고봉이다.
63m봉우측아래엔 종중묘인듯한 묘지들이 여럿있고 재실도있다.
63m봉을 내려서며 본 승반산(우).
가운데 잘록이 넘어에 흥복사가 있다.
11 : 41/44. 승반산(升盤山.58.5m).삼각점(국방부 대삼각점).직진해 넘어감.
견공들이 짖어대는 과수원 좌측 아랫집을 지나서 수렛길을 따라 조금 나가서 수렛길은 좌측 흥복사쪽으로 내려가고 맥은 직진해 오른다.
고개에서 좌측으로 2분정도 내려가면 흥복사가 있는데 절은없고 터만 남아 있는줄 알았는데 새로 절을 지어서 규모도 크고 깨끗하다.
절안으로 들어가서 일일이 둘러볼 시간은 없어 담넘어로 대충 훝어보니 마당엔 배롱나무가 큰게있고 오래된탑도 보인다.
흥복사뒤 수렛길에서 뒤 돌아 본 63m봉.
사진 좌측이 63m봉이고 과수원뒤는 빽빽한 대숲이다.
흥복사전경.
극락전에 걸려 있던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인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이 쓴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대구광역시에 있는 어느 사찰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
《전북고적》에 따르면 흥복사에는 삼대진물(三大珍物)로 500년 수령의 신단목(神壇木),
김제에 부임하는 수령들이 마실 물을 길어갔다는 우물 설천(雪泉), 법당의 청자기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청자기와는 본래 극락전에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은 전하지 않는단다.
흥복사 사적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흥복사>
650년(백제 의자왕 10)에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이 창건하였다. 처음 이름은 승가사(僧伽寺)이다.
보덕은 고구려 사람이나 당시 고구려에 도교(道敎)가 융성하자 백제로 망명하여 《대반열반경》을 연구하며
이곳저곳에서 강설하다가 이곳에 극락전을 짓고 삼존불을 모셨다. 창건 후부터 임진왜란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으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완전히 없어진 것을 1625년(인조 3)에 흥복(興福)거사가 중창하고 흥복사라 불렀다.
1943년 법운(法雲)이 극락전과 관음전을 중수하였다. 1954년 불교정화운동 때에는 임시 조계종 전북종무원이 설치되었고,
1961년에는 월주(月珠)가 주지로 오면서 전라북도 불교정화운동의 핵심도량이 되기도 하였다.
1965년에는 전강(田岡)을 모셔와 선원(禪院)을 개설하고, 1969년 도영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관음전·미륵전·삼성각·정혜원·사천왕문 등이 있으며 관음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1976년 이후에 새로 지었다.
관음전에는 진묵조사가 모셨다는 관세음보살상과 후불탱화가 있다. 대웅전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팔상도가 모셔져 있으며,
내부에 〈제흥복사(題興福寺)〉 등 시문 3매와 〈관음전중창시주〉 등 현판 3매가 걸려 있다.
<흥복사에 얽힌 전설>
김제읍에 사는 흥복이라는 욕심 사나운 관리가 있었는데 그는 뇌물을 착취하고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는 등 백성들을 못살게 굴어
인근에 나쁜 소문이 자자한 터였으나 그의 부인은 열심히 암자를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렸다.
그때마다 부인은 자기 남편의 나쁜 소행을 용서해 달라고 부처님께 열심히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해 큰 흉년이 들었다. 모든 백성들이 배고픈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흥복이네 곡간에는 오히려 쥐가 살이 찔 정도였다.
그러나 욕심많은 흥복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 한 톨 나눠주지 않았다
. 그러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부인이 마침 흥복이 출타한 틈을 타서 곡간을 열고 배고픈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 어디를 갔다오던 흥복은 다리를 건너오는데 몸이 으슬으슬 하고 한기가 들어 다리밑을 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몸을 틀며 마치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을 내고 있었다.
흥복은 겁에 질려 도망을 치는데 등에 땀이 흘러 옷을 모두 적실 지경이었다.
마침 주막이 있어 잠깐 쉬는 사이에 그만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나는 네가 조금 전에 본 구렁이인데 너의 악업(惡業)으로 너와 내가 모습을 바꿀 때가 됐으나
너의 부인 때문에 내가 원통하게 업을 벗지 못하게 됐구나.」하고 엉엉 울며 사라지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흥복은 자기가 나간 사이에 부인이 곡간을 열어 백성을 도와준 사실을 알고
그 다음부터는 부인을 잘 받들고 불도를 열심히 닦게 되었다.
흥복은 그 후 전 재산을 털어 절을 짓고 흥복사라 이름했다 한다.
다시 돌아와서 조금 올라가면 승반산인데 두릅나무가 지천이고 정상엔 동판으로된 국방부 대삼각점이 있다.
정상에선 좌측이 아닌 직진해서 내려서면 복숭아 과수원이 나오고 건너편에 금강주유소와 23번 도로가 보인다.
맥은 복숭아밭에서 건너편 금강주유소로 이어지나 23번 도로를 바로 건널 수 없으니 우측 삼수동 삼거리로와서 신호받아 좌측으로 건너간다.
11 : 41/44. 승반산(升盤山.58.5m).삼각점(국방부 대삼각점).죽천님과 정병훈님.
좌측이 아니고 직진해 넘어간다.
승반산(升盤山.58.5m)을 내려가서 본 두악산(좌측 통신탑봉).
우측삼거리가 삼수동 삼거리이고 좌측앞쪽이 23번도로다.
맥은 복숭아밭을 건너 좌측에 보이는 금강주유소앞 도로로 이어진다.
삼수동 삼거리모습.
사진 좌측으로 건너가 금강주유소앞길로 올라간다.
금강주유소앞에서 뒤 돌아 본 승반산.
도로- 비닐하우스-승반산이 맥이다.
승반산-농가집-좌측횡단보도-주유소로 건너오는게 편한길이다.
12 : 07/25.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
금강주유소앞길을 따라 조금 나오면 은빛가든앞에서 다시 갈래길인데 우측길은 24번도로로 우리가 두악산을 다녀와서 가게될길이고
좌측길로 들어서면 바로또 갈림길이다.직진길은 백산면소재지로 가는길이고 우측 전망대길로 들어서 저앞에 두악산의 통신탑을 보며도로를 따라간다.
좌우로 모텔들이 즐비한 모텔촌을지나 두악산에오면 제일먼저 안내판이 반긴다.
두악산(斗岳山.57m)은 말(斗)에다가 쌀을 담아놓은 형상이라서 두악산이라는데 岳자를 쓴게 색다르다.보통 岳자를쓰는산은 바위산이 많고
또 험한산들인데 들판 한가운데 있는 57m짜리산으로 큰 묘지 정도밖에 안되는 얕은 산에 岳자를 쓴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정상엔 3층짜리 전망대가있고 전망대위 옥상에 삼각점이있다.
이전망대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호남야산개발사업기공식을 할 때 참석했던곳으로 그때 세워진 전망대다.
호남야산개발사업이란 호남평야의 야산들일 개간하고 섬진강의물을 끌어올려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백산저수지를 만들어 여기에 물을 저수하여 김제시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사업이었다.
은빛가든앞에서 좌측으로 들어서 다시 우측 관망대길을 따른다.
관망대길.
저앞의 통신탑 있는곳이 두악산이다.모텔촌을 지나간다.
12 : 07/25.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
12 : 07/25.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 안내판과 관망대위에 있는 삼각점.
전망대에서 둘러보는 조망이 시원하다.높이는불과 57m에 전망대높이를 더한건데 조망은 어느 큰산 못지 않게 사방팔방이 시원하다.
모악산도 보이고 방금 지나온 승반산은 물론이고 김제시며 바로 발밑의 백산저수지가 아주 평화롭고 예쁘다.
가야할 지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높낮이가 없는 들판이라 쉽게 판단이 안선다.근처에선 100m산을 갈려도 꽤멀리 나가야 있겠다.
박성태님과 정병훈님은 전망대에 점심상을 펴고 죽천님과 주류파 몇분은 혹시 아랫마을에 막걸리가 있을지 모른다며 떠나시고
몇 명은 햇볕잘드는 계단에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었다.나같이 빵이나 떡으로 대신하는분들이 몇분 계신다.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에서 본 모악산.
모악산은 김제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김제평야를 품고있다.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에서 본 승반산(앞산).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에서 본 백산저수지.
이 저수지는 오후에 보게될 능제와 같이 산이나 계곡에서 내려온 물을 받아 저수하는 저수지가 아니고
섬진강의 물을 인공으로 끌어올려 저수하는 인공저수지다.
두악산(斗岳山.57m)관망대에서 본 백산저수지와 가야할 맥길.
우측 도로를 따라 저끝 복지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 좌측끝에 보이는 높은 굴뚝있는 곳으로 갈것이다.
12 : 48. 복지삼거리.
두악산을 직진해 내려오면 모텔이 있고 도로따라 우측으로 나오면 팔봉도예가 있고 팔봉도예앞에서 24번도로를 다시만나 좌측으로 따라간다.
도예집이라서 솟대로 도자기로 만들어서 걸어놓고 가마지붕에도 각종 자기항아리들이 올려져 있다.
도로따라 조금 나오면 좌측 백산저수지로 들어가는 백산제 취입수문이 있고 맥따라서 대형수로가 뒷쪽으로있다.
저수지에서 나오는 수문이 아니라 저수지로 들어가는 수로와 수문이다. 즉 섬진강물인 운암호물을 끌어오는 수로일 것이다.
팔봉도예집의 도자기 솟대.
섬진강물을 끌어오는 대형수로와 두악산.
백산제 취입수문.
백산저수지는 1969년 10월에 인공으로 제방을 쌓고 축조된 저수지로 면적은 4백60ha 이다.
양수시설을 통해 섬진강의 운암호에서 흘러온 물을 이 저수지에서 저수하여 흘려 보내는 물은
신평천을 따라 형성된 평야지의 농업용수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
정읍출신윤흥길교수(한서대)의 장편소설 “완장”(1983년 작)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완장”하면 떠오르른게 우선 6.25때 완장두른 토박이 빨갱이들이다.
북에서 온 공산당보다 더 무섭고 악랄한게 이들 머슴출신의 토박이 빨갱이들이었다.
이 완장하나의 위력은 대단했고코딱지만한 끝발로 서민을 울리는일은 지금도 여전하다.
조형기가 출연했던 완장이란 TV 연속극도 생각난다.
도로를 따라 복지삼거리까지 쭈욱가면서 모악산과 두악산은 계속 등뒤에서 따라온다.
복지마을을 지나면복지 삼거리다 좌측 만경쪽에서 우측 익산으로가는702번도로이고 우측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좌측으로 꺽어지며 바로 우측둔덕에 진주 강인기(寅基)묘가있고 묘뒤 잡목속에 43.9m 삼각점이 있다.
복지삼거리가는길.
저앞에 복지마을과 43.9m 솔밭이 보인다.
복지삼거리.
저앞 삼거리에서 맥은 좌측으로 꺽어가고 앞에보이는 솔숲에 43.9m 삼각점이 있다.
43.9m삼각점에서 조삼국님.
우측이 삼각점이고 좌측 돌기둥은 묘지에서 세운 토지지신 기둥이다.
13 : 37. 대동산업단지.
북으로 올라가던 길이 좌측으로꺽어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 23번국도를 만날때까진 서쪽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모악산과 두악산,백산저수지를 보며 좀가니 좌측 포도밭에 왠 거대한 세멘트기둥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박힌 모습이며 크기도 제각각이다.끝이 뾰족한놈,부러린놈,큰놈,작은놈,거꾸로 박힌놈 폐자재를 폐기처분한건지 모르겠다.
백산사거리를 지나는데 왼쪽에서 임규진님과 고래님이 부르신다.
아마 점심과 막걸리를 하시는 모양인데 난 비주류니 해당사항이없어 인사만하고 가던길을 간다.
그러고보니 두악산을 내려올땐 같이 떠났는데 언제부터인가 혼자가됐다.결국 만경읍 종점까지 혼자왔다.
송이농산이 있는 백산 사거리를 지나 부건마을입구를 지나 중상마을입구를 지난다.
중상마을입구엔 마을을 알리는 안내판까지 있고 앞 둔덕고개를 넘어서면 저앞 300m에 사거리가있다는 도로표지판이 있고
좌측으론 인삼밭이있는데 여기서 좌측 인산밭옆 세멘트길로 들어간다.
세멘트길은 잠시후에 우측 축사앞에서 끝이나고 맥은 축사뒤 인삼밭뚝으로 이어진다.
우측밑으로 커다란 비닐하우스밭이 있고 그밑에 산치사거리의 도로표지판이 보인다.
인삼밭을 건너가 노란물통앞에서5번군도를 만나고 좌측으로 조금 가면 맥류연구포장 표지판을 만난다.
맥류연구포장 표지판뒤 잡목속에 있는 35.1m삼각점을 확인하고노랑물탱크로 내려와 조금가면 우측에 대동산업단지가 있다.
입주업체는 몇 안돼 보이고 단지앞길은 잠깐 4차선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모악산과 두악산을 보며간다.
왠 세멘트기둥들? 박힌 모습이며 크기도 제각각이다.
폐기물을 재활용한건가?
백산사거리를 지나고.
부건마을입구도 지니고.
중상마을입구도 지난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산치사거리 까지 더가서 좌측 도로를 따라가도 되지만 물을 건넌다.
맥은 여기서 좌측 인삼밭으로 이어진다.
앞에 보이는 인삼밭으을 건너가면 5번군도가 나온다. 우측은 축사라서 여름엔 냄새가 지독하겠다.
인삼밭뚝길이 편치않다.
인삼밭뚝길을 건너가며 우측으로 본 산치 사거리.
좌우로 있는 맥류연구포장이다.
맥류연구포장 안내판뒤 잡목속에 35.1m삼각점이 있다.
13 : 37. 대동산업단지.
13 : 50. 우복농장,조산농장입구.
대동공단을 지나면 소동마을입구의 네거리를 지난다. 신호등은 점멸등이다.소동마을표석 우측으로 소동마을이 보이고
표석뒤로는 멀리 우리가 가야길 맥과 조산농장이나 우복농장인듯한 농장의 이층 원두막도보인다.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며 우측능선이 맥길인데 초입에 농기계며 자재들이 쌓여있고 여기엔 길이없고 표지기도 없다.
맥으로 이어지는 진입도로는 20여m를 더 휘어가서 우측으로 세멘길로 이어지며 이쪽에 표지기들이 두어개 붙어있고
큰길 입구에 조산농장 100m,우복농장 400m 표지판이 있다.지나치기 쉬워 조심할곳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앞선 선두조가 이곳에서 큰길따라 계속가서 대형 알바를했고 선답자들도 이곳에서 많이 알바를 하는곳이다.
우측으로 본 대동공단.
소동마을입구의 네거리를 지난다. 신호등은 점멸등이다.
작은 그림은 우측 소동마을모습이다.
소동마을입구를 지나며 본 가야할 조산농장쪽모습.
5번군도인 2차선 포장도로인 여기서 우측 우복농장,조산농장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작은그림과 같이 능선분기점엔 농기계와 농자재들이 쌓여있고 길이나 표지기가 없어 지니치기쉽다.
좌측으로 꺽어진후에야 우측으로 이런 길이나온다. 대형 알바하기 쉬운곳이니 특히 조심할 곳이다.
14 : 18. 서해안 고속도로 대동2육교.
5번군도에서 세멘길따라 4분쯤가면 우측에 큰 농장건물이 있고 Y자 갈림길인데 맥은 좌측 수렛길이나잠시후에 다시 만나서 대동1육교를 건넌다.
대동1육교를 서해안 고속도로로 착각하기 쉬운데 서해안 고속도로는 좀더 가야하고 이 도로는 1/25000은 29번 국도로 적고있는데,
김제-동군산IC를 잇는 4차선도로다.원 29번 도로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너다복사거리에서 나온다.
대동 1육교를 건너 직진해 몇분가면 Y자 갈림길이고 좌측에 임천임씨 종산입구표석이 있다.
두길은 몇분후에 서해안고속도로앞에서 다시만나고 우측길은 세멘길이고 맥에서 조금 아랫쪽으로 물길을 건너가고,
맥은 왼쪽능선길이고 인삼밭을 지나 포장도로를 만나 우측으로 조금 나가면 좀전에 헤어졌던길과 다시만나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너간다.
우측에 큰 농장건물이 있고 Y자 갈림길인데 맥은 좌측 수렛길이나잠시후에 다시 만나서 대동1육교를 건넌다.
대동1육교를 서해안 고속도로로 착각하기 쉬운데 서해안 고속도로는 좀더 가야하고 이 도로는 1/25000은 29번 국도로 적고있는데,
김제-동군산IC를 잇는 4차선도로다.
두길은 몇분후에 서해안고속도로앞에서 다시만난다.
맥은 좌측길이고 우측 세멘길은 맥에서 좀 떨어져서 건너간다.
두길은 몇분후에 서해안고속도로앞에서 다시만난다.뒤돌아보고 찍은 그림이다.
저집은 전엔 구멍가게였는듯싶은데 지금은 빈집이다.
사진 앞쪽 도로길이 맥길이고 사진 우측으로 맥은 이어지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널려면 앞쪽 대동2육교를 건너야한다.
대동2육교를 건너서는 직진하지 말고 좌측으로 꺽어가야한다. 조심할곳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 IC와 고속도로로 끊긴 건너편모습.
14 : 31. 23번도로 다복 사거리.
대동2육교를 건너 직진하는 큰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가며 저앞에 서김제 IC가 보이고 좌측 고속도로건너로 통신탑이 보인다.
빨간 2층집앞을 지나 고물상을 지나고 식품공장을지나서 7,8분 가면 23번국도를 만나는 다복 사거리다.
서쪽으로 오던길이 북쪽(우측)으로 꺽어 대석리,두무동버스정류장을 지나간다.국도라서 차들의 왕래가 많아졌다.
14 : 31. 23번도로 다복 사거리.
우측으로 꺽어 북쪽으로 23번 도로를 따라 만경읍까지간다.
건너편의 정류장은 대석리정류장이다.
뒤 돌아 본 다복 사거리.
사진 좌측에서 나왔다.
14 : 45. 남산서원,용화사입구.
전주이씨 회안대군표석을 지나고 묘원사입구를 지나면 우측으로 용화사와 남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고
바로앞에 보이는 작은 둔덕이 27.5m 삼각점봉이다.군산 23km,대야 14km표지판이 앞에있다.
남산서원까지 대략 500여m 되겠는데 다녀오고 싶지만 혹시나 민폐를 끼칠가 염려돼서 포기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앞에가던 선두조가 모두 내뒤에 있었고 후미까진 시간차가 많이나서 다녀와도 충분할걸 그랬다.
두무동정류장과 작은 그림은 정류장 우측의 능제상류쪽 모습이다.
14 : 45. 남산서원,용화사입구.
파랒집뒤봉에 27.5m삼각점이 있고 좌측도로끝위에 묘라 정류장이 있다.
남산서원은?.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고,
그후 순조 때 남궁 제(南宮濟)를 배향하였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유지화(柳志和)은?
1599(선조 32)∼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 첨지중추부사 희춘(喜春)의 손자이고,
사복시주부 광복(光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12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나 계모를 지성으로 섬겨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회덕 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문에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당대의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죽었다.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김제 남산서원(南山書院)에 제향되었다.
남산서원입구를 지나서 바로 우측 산으로들어 잡목을 헤치고 올라가니 묘지뒤에 27.5m삼각점이 숨어있다.
글자판은 잘못 읽겠는데 대야 443같은데 이리 403. 1980복구라고 선답자들은 적고 있다.
넘어쪽엔 많은 묘지들이 있고도로로 내려오니 묘라버스정류장이 있고 성덕면사무소2.5km등 표지판과 성덕가는 도로가있다.
묘지뒤에 27.5m삼각점이 있다.
묘라버스정류장이 있고 성덕면가는 도로와 성덕면사무소2.5km등 표지판이 있다.
14 : 59. 만경삼거리.
묘라정류장을지나 6분쯤 가면 좌측엔 미림조경,우측엔 섬진강 광역상수도시설 성덕가압장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 미림조경쪽길이 성덕산으로가는 갈림길이다.
모악지맥의 끝자락을 여기서 좌측 성덕산으로해서 진봉면 관기쪽으로 이어가는 산님들이 더러는 있는모양이나 그건 각자가 판단할일이다.
바로앞이 좌측에서 온 711번도로를 만나는만경삼거리다. 좌측에 삼복주유소가 있고 길 건너에 삼거리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좌측 711번도로는 해학로,우측 만경쪽은 만경로란다. 우측으로 휘어가며 우측으로 능제가 잘 보인다.
좌측 미림조경쪽길이 성덕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작은 그림은 우측의 섬진강 광역상수도시설 성덕가압장.
14 : 59. 만경삼거리.
좌측에 삼복주유소가 있고 길 건너에 삼거리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전북 조종면허시험장앞에서 우측으로 본 능제와 모악산.
섬진강의 물을 퍼올려 담수하는 담수호로 몽리면적 1,734㏊에 이르고 1930년 동진농조(현. 한국농촌공사)에서 축조하였으며,
능제는 99개 귀를 가진 특이한 저수지입니다.
15 : 18/40. 만경여중고앞.좌측은 진봉,심포항갈림길.
만경삼거리를 지나 공사중인 전북조종면허시험장을 지나면 만경읍시내다.
우측으로 능제와 멀리 모악산도 보인다. 모악산은 오늘내내 뒷통수에 달고간다.
모악산은 흔히 전주의 산으로 얘기하지만 오늘보니 김제의 산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김제땅 어디서나 어머니품같이 김제를 품고 있다.
만경시내를 지나 만경여중고앞을 지나면 좌측으로 진봉,망해사로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동산과 만경읍사무소 오르는 길이 나온다.
김수인회장님이 다음차에장등산밑에서 시작해서 장등산과 동산을 넘는다고했으니 이쯤에 버스가있고 먼저온 동료들이 계실줄 알았는데
버스도 없고 먼저왔을 동료들도 없다.혹시나싶어 계속도로를 따라 만경농공단지앞까지 가면서 살펴봐도 안보인다.
만경공단앞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오며 이골목 저골목 다 찾아봐도 아무도 없다.차가 없으면 사람들 이라도 있을텐데?
좌측 잔등넘어까지 다 찾아보고 한바퀴를 돌아서 다시 만경농협쪽으로 내려가니 박성태선생님과 정병훈선생님이 오고 계신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두분은 차가 동산 넘어쪽에 있을줄알고 있다하고 다음차엔 동산을 안간다는줄 거꾸로 알고 계셨다.
15 :14.만경사거리.
15 : 18/40. 만경여중고앞의 좌측으로 진봉,망해사 심포항가는길.
다음차는 이도로를 계속 따라갈것이다.
작은 그림은 코너에 있는 만경여중고모습.
15 : 18/40. 만경여중고앞.진봉,망해사 심포항갈림길에서 동산은 우측 만경읍 사무소길로 올라간다.
15 : 47/49. 동산(東山.59m)앞봉.전망대와 중계탑.모자상. 쉼터.능제조망.
이러나 저러나 시간도 있고하니 동산을 넘어가기로하고 다시 만경여중고앞에서 우측 동산으로 오른다.
조금 올라가면 넓은공터에 우측에 쉼터 정자도 있고 저앞봉위의통신탑이 보이나 길은 바로 오르지않고,
우측으로 휘어가며 만경읍사무소 좌측으로해서중앙교회앞으로 올라간다.조금 올라가니 좌측에 두릉두씨 발상기 표석이 있다.
실질적이 동산모습.
앞쪽 노란교회쪽으론 길이없고 우측 나무뒤의 빨간 중앙교회앞으로 길이 있다.
두릉두씨 발상기 표석.
두릉두씨는 만경두씨라고도 하는데 송나라의두경령이 1004년에 이곳에 표착하여 두릉두씨의 시조가 됐단다.
두릉 두씨(杜陵杜氏)
본관이 두릉(杜陵) 단본이다. 두릉은 전라북도 만경(萬頃)의 별호이므로 만경 두씨 또는 두산(杜山) 두씨라고도 한다.
시조는 송(宋)나라 태종 때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경령(慶寧)이다.
그는 1004년(고려 목종 7) 궁지현(宮池縣)에 표착하여 귀화하였다고 한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경령(慶寧)은송(宋) 진종(眞宗)의 왕위 계승(王位繼承) 문제에 관한 상소(上疏)로 직간(直諫)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 자사(蘇州刺史)로 좌천되자 아들인 중서사인(中書舍人) 지건(之建)과 우습유(右拾遺) 지방 형제를 데리고
정처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1004년(고려 목종 7) 궁지현(宮池縣:지금의 전북 김제군 만경면)에 표착(漂着)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고려 목종(穆宗)은 두경녕(杜慶寧)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宮池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두씨(杜氏)의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고,
후손들은 두경녕(杜慶寧)을 시조로 하여 봉군지(封君地)인 두릉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고려 명종 때 무신으로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경승(景升)이 중시조가 된다.
각종 운동기구들이 있고 전망대가 있는 동산(東山.59m)앞봉의 전망대위에 올라갔다.
바로앞에 능제가 시원스럽다. 능제뒤로 모악산이 더욱 커 보인다.
능제도 백산저수지와 같이 섬진강 운암호의 물을끌어다가 저수해서 농업용수로 쓰고있는 담수호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축조됐다.
지도상의 동산은 이 전망대에서 조금 앞쪽인 통신탑 건너편에 있는 봉이겠으나 실질적인 동산정상은 여기겠다.
지맥의 맥은 여기서 좌측으로 이어져 진봉으로가는 702번도로 우측의 송전마을로 이어질 것이다.
이봉엔 삼각점은 없고 앞쪽의 통신탑있는곳은 철망으로 막혀있고 우측으로 내려서 건너편 작은 둔덕으로 건너가면 작고 허름한암자가 있고,
암자뒤 둔덕이 지도상의 동산이 될텐데 좌측으로 영광아파트 102동 동넘버만 보일뿐 산이름을 붙이기엔 앞 전망대봉만 못하다.
좌측 아파트쪽으로 길이없고 넘어가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만경농공단지앞의 도로를 만난다.
동산(東山.59m)앞봉의 전망대와 모자상.
꼭대기의 용의 모습이 살아있다.
전망대에서 본 능제와 모악산.
16 : 10. 장등산(長登山.42.4m).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현주환님을 만났다.장등산엘 다녀오는 모양이다. 차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차가손 좀 보느라고전주엘 갔다가 방금전에 왔는데 바로윗쪽에 있단다.그러면 그렇치 전주가고 없는차를 찾아 헤맺다.
길따라 내려가서 삼거리에 있는 주유소앞에서 좌측으로 장등산을 올랐다.묘지들을 지나 좌측으로 좀더 오르면
42.4m삼각점이 있는 장등산이다.박성태선생님은 공단앞 큰길에서 맥따라 공장옆으로 올라왔는데 길이없고 파인곳이있어 나쁘단다.
다시 도로로 내려와 도로따라 만경농공단지앞의 서원사료앞에오니 차가있고 일행들이 도착하고 있다.
오늘의 산행은 여기서 마친다.
주유소앞에서 좌측으로 본 장등산.
16 : 10. 장등산(長登山.42.4m).
정병훈선생님과 박성태선생님 폼이 꼭 볼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메모하고 녹음하고 계신모습이다.
장등산(長登山.42.4m)에서 신산경표의 박성태선생님과 함께.
◈ 돌아오는길.
만경읍내의 식당으로이동하여 저녁을먹고 18시에 출발하여
우리가 지나왔던 29번 도로를 따라 만경삼거리,다복사거리를 지나 서김제 IC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가서
군산IC를 지나 군장분기점에서 공주로 올라오는 17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공주로 올라와서 당진-대전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공주에서 다시 논산-천안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에오니 19 :35분.
여름같으면 아직 해가 있을 시간에 집에 돌아왔으니 하행길은 뭔가 거져먹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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