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산.

중국 요녕성의 봉황산(鳳凰山.836m) 팸투어.

중국 요녕성의 봉황산(鳳凰山.836m) 팸투어.

◈ 산행지와경로 : 중국 요녕성 봉황산과 단동 압록강.

인천 제1 국제여객터미널-선내숙박-단동항-단동시내-압록강단교,유람선-국제호텔투숙-봉성시 봉황산-단동시내-단동항-선내숙박-인천.

◈ 일시: 2011. 05. 13~16일(3박4일).

동행인: 트레킹 전문여행사 (주)산이 좋은 사람들88명.

◈ 지도 :

중국 요녕성의 봉황산(鳳凰山.836m)가는길 1.
클릭하면 확됩니다.

중국 요녕성의 봉황산(鳳凰山.836m)가는길 2.
클릭하면 확됩니다.

중국 요녕성의 봉황산(鳳凰山.836m)등산안내도.<2005년도에 안내판을 보고 그린것인데 지금은 안내가 새로 그려져 있다.>
클릭하면 확됩니다.

중국 요녕성의 봉황산(鳳凰山.836m)등산안내도.<봉황산 홈피 지도를 확대한 것이다>
클릭하면 확됩니다.

◈ 산행후기.

1일(2011. 5. 13.금).

16 : 40. 천안에서 인천행버스(7400원).
18 : 30. 인천터미널에서 택시로 제1국제여객터미널로 감(13000원).

18 :50 / 21: 00.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주)산이좋은 사람들과 미팅후 승선 6인실배정.
23 : 40. 단동페리호로 인천출항.오후5시출항시간이 배가 바뀌고 첫 출항이라 많이 늦어짐.

선박이 교체돼서 오후 5시에 출항하는 배시간이 좀 늦어질테니 오후 7시까지 집결하라는 통보를 받고
오전중에 긑내려던 밭일을 마져 마무리 짓느라고 점심도 굶은채 오후 3시반까지 일을 했다.
겨우씻고 서둘러 택시타고 터미널로 나가 인천가는 4시 40분차를 타고서야겨우 떡으로 허기를 채우고
고속도로가 막혀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인천에 도착하여 버스로는 약속시간에 늦을듯싶어 택시타고 고속도로해서
여객터미널에 가니 6시 50분으로 약속시간에 겨우 대 갔다.

지난3월의 옥황산투어때 만났던 낯익은 산우님들이 이번에도 대거 참여하여 어림잡아 15명은 되는듯싶다.

출항시간이 더늦어진다기에 대구 산정산악회 지홍석회장을 몇 년만에 만나 밖에 나가 저녁을 먹으며 회포를 풀고
9시가 돼서야 출국 수속을 받고 승선하여2층 침대방인 6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선박이 바뀌고 아직 짐도 못푼 상태라 어수선하다.
선실은 물론 휴게실에도 TV가 아직 없고 자판기며 매점도 문을 열지 않아 바로잠자리에 들어 뒤척이다 보니 12시가 다 돼서야 배가 출항한다.

2일(2011. 5. 14.토).

07: 30. 아침식사.
09 : 00/10 ; 00. 단동페리호 관계자분들과 간담회.
15 ; 00/ 18 :20.단동항 도착하여 입국수속완료.09 시에 도착될 배가 도착도 많이 늦어졌고 입국수속도 지연됨.
19 ; 05/25.압록강단교.입장료 30위엔.
19 ; 52/20 ; 35. 압록강 유람선 타고 북한을 가까이서 둘러봄.
21 ; 00/10 ; 30. 국제호텔 4층에서 단동시 여유국장과여행사 환영식과 저녁식사.
22 : 45/50. 압록강단교 야경.
23 ; 00/12 : 00. 꼬치구이집에서 뒷풀이.
00 ; 10.단동국제호텔투숙.

새벽 4시반에 눈을 떠 뒤척이다 6시가 좀 넘어 나가보니 해는 벌써 떠 있고
어슬렁 거리다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9시에 단동페리호 沈相煥 지사장님과 金壽鳳이사님이 자리를 마련하여
이경훈 산이좋은 사람들 사장님,김형재 전국등산엽합회 사무국장님. 지홍석 대구 산정산악회 회장님.한상갑 대구 매일신문기자님.
이재원 사람과 산지 기자님.마운틴산지의 이기자님과 같이 간담회를 가졌다.

입항시간이 늦어져 점심때가 되니 예정에 없던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1시면 입항 할 줄 알았더니
3시가 돼서야 입항을했는데 출항 첫날이라 신고를 받는지 입국수속은 늦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중국대사관의 실수로 중복된비자번호가 나와 그걸 확인하느라 또 늦어져 입항한지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입국심사가 완료됐다.

해는 이미 저녁때가 돼 쥐꼬리만큼 남았으니 봉황산산행은 내일로 미루고 일정을 바꿔 내일갈 끊어진 압록강 단교를 보고
유람선을타러갈텐데곧 날이 어두워질테니 유람선 탈 시간도 바쁘게 됐다.

단동시는 단동항에서30여km떨어져있어 40여분 걸리는데 단동시내로 들아가 압록강단교로갔다.
압록강단교는1911년에일본인들이건설한 다리로 길이 944.2m에 너비 11m에 12개의 다리 기둥이 있는데
1950년 6.25때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져 현재 북한쪽은 4개의 기둥이 끊어진채 있어 기념으로 놔두고
그옆에 중국에서 건설해사용하고있는중조우호교 새 철로가 있다.
이재에 밝은 중국인들은 이 끊어진다리 입장료로 30위안 (약 5500원)씩 받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리위에서 보면 단동시는 고층삘딩과 아파트숲으로 국제도시가 됐고 강건너신의주시는조요한시골동네같이보인다. .

20여분 압록강단교를 둘러보고 좀 늦었지만 버스로 다시북쪽으로 압록강따라 25분 올라가서 유람선을 타고
강 양쪽이 모두 북한령인 강가를 따라가며 아주 가까이에서 북한 땅과 근무중인 군 초병들을 보고 돌아왔다.
보통 압록강유람선은 압록강단교 아래에서 시작해서 신의주앞쪽으로 삥 돌아오는데
이곳은 우측섬이 북한영토라 강 양쪽으로 북한땅을 볼 수 있는곳이라 이곳에 유람선이 생긴 모양이다.
북한과 중국은 가까운 사이라 육지에 상륙은 못해도 강에선국경을 넘어도 어디서나조업이가능하단다.
돌아오는길가에 있는 호산장성은 날이 이미 어두워져 들리지 못하고 먼발치로만 보고 단동시내로 돌아왔으나
2005년 6월에봉황상갈때 들렸고 한달뒤인 7월에 육로로 백두산 다녀올때 또들려 간곳이라 미련은 없다.

전에 들려 묵은적이 있는 단동국제호텔에서 단동여유국(관광국) 국장님과 여행사의환영식 만찬이 있었고
식사후엔 밤 11시에 소등한다는 압록강단교 야경을 나가 봤는데 좀 엉성했고 꼬치구이집으로 자리를 옮겨
조개구이와 꼬치구이를안주삼아정담을나누다 자정이 돼서야 숙소에 들었다.

18 :50 / 21: 00.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주)산이좋은 사람들과 미팅.
(주)산이좋은사람들 이경훈 사장님이 출항이 늦어지는 상황설명을 하고 있다.


09 : 00/10 ; 00. 단동페리호 관계자분들과 간담회.
하얀 와이셔츠 입은분이 단동페리호 沈相煥 지사장님이시고시계방향으로 그우측분이 金壽鳳이사님,
"사람과 산"지 이재원기자님.한상갑 매일신문 기자님,김형재 전국등산엽합회 사무국장님, "마운틴산"지의 이기자님.
지홍석 대구 산정산악회 회장님. 이경훈 산이좋은 사람들 사장님.

단동항 도착.

단동항 접안이 시작되나...


15 ; 00/ 18 :20.단동항 도착하여 입국수속완료.09 시에 도착될 배가 도착도 많이 늦어졌고 입국수속도 많이 지연됐다.

3시가 돼서야 입항을했는데 출항 첫날이라 신고를 받는지 입국수속은 늦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중국대사관의 실수로 중복된비자번호가 나와 그걸 확인하느라 또 늦어져 입항한지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입국심사가 완료됐다.


단동항 .


19 ; 05/25.압록강단교.


압록강유럼선과 단동시모습.
보통 유람선을 여기서 타고 철교옆으로해서 신의주앞으로갔다 한바퀴 돌아온다. 강건너로보이는곳은 신의주다.

2005년에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 가서 본 신의주 모습이다.


19 ; 05/25.압록강단교 끝.


압록강단교 끝에서 본 신의주.다리 4개가 6.25대 폭격으로 끊겨있고
좌측 철교는 현재사용하고 있는 중국에서 걸설한 중조우호교다.


압록강단교.


19 ; 52/20 ; 35. 호산장성 북쪽에 있는 압록강 유람선 타는곳(天逸旅遊).
보통 압록강유람선은 압록강단교 아래에서 시작해서 신의주앞쪽으로 삥 돌아오는데
이곳은 우측섬이 북한영토라 강 양쪽으로 북한땅을 볼 수 있는곳이라 이곳에 유람선이 생긴 모양이다.


유람선을 타고 가며 우측으로본 북한땅 삼각주 섬로 보이는 호산장성 .


유람선을 타고 가며 좌측으로본 북한본토.군인들 막사엔 불이 들어오고 후래쉬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21 ; 00/10 ; 30. 국제호텔 4층에서 단동시 여유국장과여행사 환영식과 저녁식사.


단동시 여유국장님의 환영사기 있고


김형재 전국등산엽합회 사무국장님이 답사를 하고 있다.우측분은 단동 여행사사장님.


환영만찬.


22 : 45/50. 압록강단교 야경.


아래 그림들은 낮에 시간에 없어 보지 못한 호산장성모습이다.

호산장성(虎山長城)은 단동시에서 압록가을 따라 북동으로 약 12km 떨어져 있고 국가 AAAA급풍경구인데
고구려 박작성으로 알려진 천리장성의 시작점인데 요 근래에 동북공정사업을 하면서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고
호도하며 만리장성기점이란 저형물도 세우고 대문짝도 크게 만들었다.

호산산성을 넘어가면 작은 도랑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으로 한발짝만 건너면 북한이다.
(압록강 본류는 작은 섬 하나를 지나 건너편으로 흐른다)
일보과(一步跨)표석이 있고 2005년 11월엔 지척(咫尺)이란 표석을 하나 더 세웠다.
산성위 꼭대기에 올라가면 북한땅과 압록강이 바로 발밑으로 보인다.


호산장성(虎山長城).


단동10경.


호산장성(虎山長城).


호산장성(虎山長城)위에서 본 압록 강본류(저앞쪽)와 국경선(발밑의 작은 하천)


호산장성(虎山長城)위에서 본 북쪽 모습.
저 도로는 백두산으로 가는길이고 저앞 강에서 유람선을 탔다.좌측 수로가 국경선이고 우측에 보이는 섬들은 북한땅이다.


호산장성(虎山長城)위에서 본 입구쪽 장성모습.


호산장성(虎山長城)위에서 본 일보과(一步跨)
우측밑에 빨간 정자앞에 일보과(一步跨)표석이 있다.

일보과(一步跨)에서 올려다 본 호산장성(虎山長城).


일보과(一步跨).

3일(2011. 5. 15.일).

07: 30. 호텔 2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아침식사.
07 :55/09 ; 08.단동을 출발하여 봉황산입구도착.
09 : 20/09 : 50. 봉황산(鳳凰山.836m) 산문에서 봉성시 부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등산 교류 시동식 행사.
10 ; 07. 셔틀버스로 산위로 이동하여 자양관앞에서 산행시작.
10 ; 12. 삭도(리프트 탑승장)옆 해방기념탑뒤로 오름.
10 : 21. 갈림길에서 좌측 두모궁쪽으로 오름.우측은 봉화대쪽으로 오르는길임.
10 : 45. 계곡을 길게 올라간 주능선위 선인과.
11 : 05. 장군봉 (將軍峰).조망좋아 주변이 다보임.
11 ; 17/23. 삭도참(리프트 탑승장).
11 ; 38. 토이봉(兎耳峰).
12 : 04. 노우배 (老牛背)날등위.
12 : 26. 천하절(天下絶)절벽계단.
12 ; 34. 노호구(老虎口)바위굴.
12 : 48. 전안(箭眼)에서 좌측으로 하산.통천문.
13 : 20. 임도.
13 ; 23. 조앙사(朝陽寺).
13 ; 31. 삭도참(리프트탑승장).
13 : 35. 셔틀버스주차장에서 산행종료.
13 : 35/15 :00. 단동도착하여 점심.
15 : 00/16 : 00. 점심식사와 농산물판매장쇼핑.
16 ; 00/18 : 00. 단동항으로 이동하여 승선완료.
18 ; 50. 출항.
21 ; 00/22:00. 단동페리호 사장님의 맥주파티.

호텔 23층 회전 스카이 라운지에서 단동시내와 위화도를 내려다보며 아침을 먹었다.
전엔 스카이 라운지가 회전을 하며 돌아간듯싶은데 지금은 노후돼서 그런지 돌아가진 않는다.
아침을 먹고 국도를 따라 봉황산으로 갔다.봉성시까진 단동에서 심양가는 고속도로도 있지만 시간차가 별로 나지 않는 모양이고
가면서 우측으로 오룡산이보이고봉황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는 봉황산의 날개격인 산줄기와 봉황산정상인 채운봉의 통신탑이 보인다.

부산부터 신의주을 거쳐 시베리아로 간다는 유라시아 협궤철로를 건너 봉황산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봉황산은 단동에서 60여 km 떨어진 봉성시에서 불과 3km떨어져있는 AAAA 국가급 풍경명승지로 오빠산,집산,곰산으로 불렸는데
당태종 이세민이 봉황산이라고 하였다하며 고구려시대엔 오골성으로 안시성과 주변성들에물자를 지원하던 고구려성이었단다.

봉성부시장과 관계자분들과 중국 등산인들이 참석한 한중 등산교류 시동식을 마치고 중국산악인들과 합동산행을 하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 중국팀은 걸어서 오르고 우리팀은 셔틀버스로 산위 등산로입구까지 올라가 산행을 시작했다.

6년전에 왔을 때만해도 산문입구엔 사람들이 엄청 많았으나 산문안으로 들어서니한산했는데
아마도 비싼 입장료 (전엔 30위엔이던 것이 오늘은 60위엔(11000원) 때문이 아닐가 생각했다.
중국은 아마도 산에 오는 것을 놀러 온다고 생각하는지 산 입장료가 상당히 비싸다
황산같은 명승지는 입장료가 우리돈 25000원(지금은 환율 때문에 더 비쌀테지만)이나 하니 비싸긴 엄청 비싼거다.
우린 국립공원 입장료1~ 2000원도 비싸다고 아우성을 쳤는데...


산위 셔틀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전엔 사람들어별로없었는데 오늘은 소풍온 중학생들과 일반인들로 북북적적한다.
그동안 몇 년사이에 많이 달리진 모습이고 일요일에 학교에서 정규 소풍을 온것도 소풍은 놀러오는 것이라는 관념 때문일지 모르겠다.

자양관을지나 삭도(리프트)타는곳에서 일부는 리프트를 타고 오르고 걸어갈 사람들은 우측 해방기념탐뒤로 들어섰다.
계단길로 몇분 올라가면 갈림길인데 우측길은 삼교당을 지나 취선대로해서 봉화대로 오르는 제일긴 코스길로
지난번에 왔을땐 그쪽길로 갔었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 조금 단축 코스인 좌측 두모궁쪽길로 들어섰다.
긴 코스로 가지 못해 좀 서운했지만 나중에 보니 암릉에서 정체가 심해 그쪽으로 갔으면 배시간을 대지도 못할뻔했다.

두모궁뒤에서 봉화대로 오르는 절벽길을 건너다보고 계곡따라 20여분 급경사를 올라가면 봉화대에서 온 주능선을 만나고
숨한번 돌리고 좌측으로 꺽어 오르면 장군봉인데 앞쪽으로 노후배날등과 전안봉의 깍아지른 절벽위에 점으로 된 사람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론 봉황산의 최고봉인 채운봉이 건너다 보이고 그 좌측밑으론 봉황산의 속살이 내려다보이고 뒤론 봉성시내와
봉화대부터 온 능선위에 나한봉이 오뚝하게 앉아있다.

장군봉을 내려서면 리프트가 올라오는 삭도참으로 음료수와 물을파는 매점이 있고 토이봉(兎耳峰) 안내석이 있다.
예전에 왔을 때 여기서 가이드 아가씨와 이경훈사장님과 수박먹던 생각을 하며
오늘은 집에서 싸온 물건너온 포도를 이사장과 먹으며 옛날 얘길 했다.

장군봉을 뒤돌아보고 올라서면 토이봉인데 큰 바위 꼭대기에 있는 한무더기 바위손은이슬만먹고살아도 탐스럽게 잘만 자란다.
토이봉을 내려서 바위난간을 오르면 노우배 (老牛背)표석이 있고 건너편에 노우배 날등과 전안봉이 건너다 보이고

노우배 날등부터 전안봉을 넘을 때까진 관광나온 중국인들로 길이 막혀 시간이 지체된다.

늙은 소등같다는 (老牛背)날등 좌우는절벽이나 쇠난간이있고 바위는 계단이나 홈을파서 미끄럽지 않아 크게 어려울건 없으나
고소공포는 다소있고 눈비오는 계절엔 조심을 해야겠다.
백보긴(百步緊),천하절((天下絶)표지석을 지나 뒤돌아 보면 지나온 암릉과 봉성시내와 봉황산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이제부터 바위옆 갈라진 틈새로 내려가는데 좌측은절벽이고 계단폭은 좁고 급경사라 오금이 저린다.
그래서 백보긴(百步緊),천하절((天下絶)이란 이름을 붙였나보다.

계단을 내려오면 이번엔 횡으로 바위밑을 건너가는데 틈새가 좁아 배낭에 스틱을 단 사람들은 스틱 때문에 애를먹고
노호구(老虎口)란 바위굴을 빠져 올라갔다 다시 좁은 바위사이를 빠져 내려가는데 안쪽으로 바짝 몸을 붙여 내려간다.

전엔 못보던 호랑이 얼굴을 판 바위를 내려서면 큰 바위가 위에 얹혀있는 전안(箭眼)인데 孔洞 크기는 높이 5m에 폭은 4m쯤된다.
우리식 통천문인데 화살箭에 눈眼자를 썼는데 당나라의 설인귀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전안(箭眼)에서 앞 신마봉만 넘어가면암릉길은끝나고육산이라쉬울것같은데
오늘은올라오는 암릉에서 지체가 많이돼서 신마봉을 넘을 시간이 없어 여기서 좌측으로 하산했다.
하산길도 바윗길 급경사로뚝떨어져내려가고 채운봉안부에서 내려온 임도까진 30여분 가까이 걸린다.

임도에 내려서면 매점도 있고 임도따라 몇분 내려오면 좌측에 조양사란 큰 절이 있고 뒤로 전안봉의 절벽틈새길이 올려다 보인다.
조앙사(朝陽寺)는 1488년에 세워졌고 원 명은 大安寺로 봉황산에서 제일 큰절인데 문앞엔 두 마리의 봉황상이있다.

조양사에서7,8분내려오면아침에올랐던해방기념탑과 앞에 리프트타는 삭도참이있고다시3,4분내려가면셔틀버스종점이다.
주차장에서 시작해서 봉황산을 단축해서 돌아 오는데 3시간 반쯤 걸렸으니전구간은5시간 정도면 여유로운 산행이 될것같다.

내려오는대로 셔틀버스를 타고 봉황산성문을 지나 산문밖으로 나가 바로 우리버스로갈아 타고
1시간 거리의 단동으로 나가서좀늦은 점심을 먹고 시민공원인 금강산공원앞에 있는 농산물 판매장으로가서
북한 참깨등 농산물이나 술등을 사고 바로 단동항으로 갔다.
농산물상점은 주로 북한산 농산물을 파고있고북한산 참깨는 여기선 5k에 3만원이다.
전엔 외국 나오면 뭘 사가기도 했지만 번번이 버려져서 지금은 노쇼핑.
그러고보니 97년에 백두산갈때 연길 곰사육장에서 산 한갑에 삼십 몇 만원씩 주고 산 웅담은 지금도 책상속에 그대로 있다.

단동항으로 나갈땐올때완다른길인조중국경선을따라내려갔는데좌측은 압록강본류 건너편 중국쪽에 있는 북한땅인데
섬아닌섬이된된넓은삼각주이고 그 아래쪽 하구쪽은 드넓은 갯벌이다.

들어올땐 입국절차가 많이 지체되더니 나갈땐 일반승객들이 이미 나간 상태라 그런지 맨꽁지에서 일사철리로 나가
승선하고 얼마 안있어 바로 출항이다.

저녁먹고 저녁엔 단동페리호 사장님이 주선하신 과일과 맥주파티가있었는데원래는 올때 할 환영식이였는데
시간이 없어 갈때 하게됐다는데 매점 맥주를 전부다 내 왔는지 테이블마다 맥주가 수북하다.

07: 30. 호텔 2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아침식사.
전엔 스카이 라운지가 회전을 하며 돌아간듯싶은데 지금은 노후돼서 그런지 돌아가진 않는다.

07: 30. 호텔 2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본 단동시.
단동시내만 100만 인구구 살고 있고 단동시 전체는 300만명이란다.
국경도시라 하루게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북한이 개방되는 속도따라 단동시도 커질 것이다.


우리가 묵은 단동국제호텔인데 전엔 제일 큰 호텔이었지만 지은지 오래돼서 지금은 그 명성이 전만못하다.
우리를 환영한다는 프랭카드가 걸려있다.


봉황산(鳳凰山.836m)으로 가면서 차창밖으로 본 봉황산(좌측뒷산).

봉황산(鳳凰山.836m) 산문에 도착하여 본 봉황산(鳳皇山.836m)주능선.
우측긑이 호랑이 얼굴이 그려있던 전안봉(822m)이다.


봉황산(鳳凰山.836m) 산문.
입장료는 60위엔(약 11000원)으로 상당히 비싸고 산위까진 셔틀버스가 다닌다.요금은 또 따로 내겠지...


한중 등산 교류 시동식 행사가 준비중이고...


봉성부시장과 관계자분들과 중국 등산인들이 참석한 한중 등산교류 시동식행사가 시작되고 .


여자분인 봉성부시장의 환영사가 있고.


대구 산정산악회 지홍석회장님의 답사가 있고.



선물교환이 있고


기 교환이 이어지고.


단체사진 대충 찍고 바로 셔틀버스로 산위로 올랐다.

요 사진은 산문 바로뒤로 있는 상징 조형물인데 봉황이 조각돼있고 삥둘러 용을 조각한것같은 석주가 있는데 내용은 모르겠다.


요 사진은 봉황산 오르길에 봉황성밑에 있는데봉황산10경에이사진이나오는데 계곡을 말하나?


봉황산 산성인데 여기서 표를 받는다.




10 ; 07. 셔틀버스로 산위로 이동하여 자양관앞에서 도착했다.

중학생들이 소풍을 와서 시끌버끌하다.


자양관앞을 지나면 리프트가보이고.


원숭일데리고 뭘 하는건지 모르겠다.사진 모델인가?
전엔 아이스케키 장사가 목청 돋워 아이스케~키를 외치더니 지금은 없어졌다.


10 ; 12. 삭도(리프트 탑승장)옆.
리프트를 탈 사람은리프트를 타고(편도 30위엔.550원)걸어갈사람은 해방기념탑뒤로 오른다.


10 : 21. 갈림길.
시간이 없어 여기서 좌측 두모궁쪽으로 올랐다.우측길은 봉화대쪽으로 오르는길이다.


저집은 벽하궁이고 두모궁은 좌측 위에 있는데 사진은 못 찍게 한다.


두모궁뒤에서 건너다 본 봉황동길 오름모습.


10 : 45. 계곡을 길게 올라간 주능선위 선인과에서 뒤 돌아본 벽하궁하산길모습.하산길 표지석이 있다.


여기서부터 사진 몇장은 좀전 갈림길에서 우측 봉화대쪽으로 올라 봉화대 거쳐 여기 선안과 까지 온 모습이다.


삼교당.

컴컴한 바위굴을 빠져나가는데 후레쉬를 판다.


컴컴한 바위굴을 빠져나가 절벽을 오르고

내려다보면 올라온 주차장과 뒤로 봉황산장이 건너다 보인다.


봉화대다.건너편엔 나한봉이 높게 올려다 보인다.



나한봉에서 봉황산주봉인 채운봉과 전안봉이 건너다 보이고 내려가면 두모궁에서 올라간길과 만나는선안과 안부다.


선인과에서 조금 올라서서 뒤 돌아 본 봉성시와 우리팀인듯한산님.

11 : 05. 장군봉(將軍峰)에서 좌측으로 본 산군들.



11 : 05. 장군봉(將軍峰)에서 뒤돌아본나한봉(羅漢峰).


11 : 05. 장군봉(將軍峰)에서 본 노우배(老牛背.암봉밑 칼날 날등)와 전안봉(箭眼峰. 뾰족한 암봉).
뾰족한 암봉 좌측에 보이는 바위틈새로 넘어간다.

장군봉(將軍峰)에서 본 봉황산 주봉인 찬운봉(攢云峰.836m)전안봉(箭眼峰)

11 : 05. 장군봉(將軍峰)에서 본 찬운봉(攢云峰.836m)정상에서 좌측으로 뻗어내린 능선.



11 : 05. 장군봉(將軍峰)에서 좌측 아래로 본 주차장위 봉황산장.


11 ; 17/23. 삭도참(리프트 탑승장).
매점이 있고 편도 30위안. 중국은 키가 1.1m~1.5m면 어른도 반표다.어딜가나 매표소옆엔 키재는 눈금자가 벽에 있다.


삭도참(리프트 탑승장)에서 토이봉(兎耳峰)으로 올라서며 뒤 돌아 본 장군봉.


늙은소등같이생겼다는 노우배 (老牛背)날등과 전안봉(箭眼峰. 뾰족한 암봉).


늙은소등같이생겼다는 노우배 (老牛背)날등.


전안봉(箭眼峰).


노우배 (老牛背)날등에서 뒤 돌아 본 장군봉.


노우배 (老牛背)날등에서 좌측으로 본 조양사와 주차장쪽.

노우배 (老牛背)날등에서 본 봉성시.




백보긴(百步緊)근처에서 뒤 돌아 본 노우배,장군봉,나한봉.


백보긴(百步緊)근처에서 올려다 본 전안봉.


12 : 26. 천하절(天下絶)표석에서 뒤 돌아 본 노우배,장군봉,나한봉.

천하절(天下絶)절벽계단.
좌측이 절벽이라 천하절(天下絶)이라하는지 지도는 여기를 천하절(天下絶)로 적고있다.


뒤 돌아 본 천하절(天下絶)절벽계단.

요 바위밑을 기어서 건너가는데 봉황산 홈피 사진설명은 여기를 백보긴(百步緊)으로설명했다 .

노호구(老虎口)앞에서 본 찬운봉(攢云峰.836m).


12 ; 34. 노호구(老虎口)바위굴.


전엔 못봤는데 호랑이 얼굴상이 새겨있다.

요홈통도 몽을 안으로 바짝붙여 빠져나온다.


전안(箭眼)위에서 본 신마봉.
저봉은 생략하고 좌측으로 내려갔다.

여기서 부터 사진 몇장은 이번엔 시간이 없어 생략한 신마봉(神馬峰.820m)구간이다.

전안(箭眼).
전안(箭眼)으로우리식으로말하면통천문인데 孔洞 크기는 높이 5m에 폭은 4m쯤된다.
화살箭에 눈眼자를 썼는데 당나라의 설인귀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신마봉(神馬峰.820m)에서 뒤 돌아 본 전안봉(箭眼峰.822m).
정점을 거치지 않고 차양 우측에보이는 큰 바위밑이 노호구이고 가운데 나무숲뒤 바위틈사이로 빠져 내려왔다.


신마봉(神馬峰.820m).여기도 높이는 찬운봉높이인 836.4m로 써놨다.
정상표석뒤로 보이는 날선바위틈사이로 빠져나간다.


신마봉(神馬峰.820m)에서 본 봉황산 주봉인 찬운봉 (攢云峰.836m).
찬운봉정상은 오르지 않고 좌측 안부에서 좌측 계곡으로 도로따라 내려갔다.


신마봉(神馬峰.820m)의 홈통바위.
배낭은 벗어야하고 덩치가큰 사람은 애좀 먹는다.




12 : 48. 전안(箭眼).오늘은 시간이 없어 여기서 좌측으로 하산했다.
전안(箭眼)으로우리식으로말하면통천문인데 孔洞 크기는 높이 5m에 폭은 4m쯤된다.
화살箭에 눈眼자를 썼는데 당나라의 설인귀와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하산길도 만만찮은 바윗길이다.


임도따라 내려가다 뒤 돌아 본 전안봉(箭眼峰.822m).
정상밑에 홈통길에 사람들이 보인다.좌측끝이 노호구다.


13 ; 23. 조앙사(朝陽寺).
조양사(朝陽寺)는 1488년에 세워졌고 원 명은 大安寺로 봉황산에서 제일 큰절인데 문앞엔 두 마리의 봉황상이있다.

셔틀버스주차장에서 뒤 돌아 본 봉황산 주봉인 찬운봉 (攢云峰.836m).


봉황산(鳳凰山.836m)을떠나며한장.


석양에 고기잡는 중국 쪽배들.



귀국길에 일몰.


단동페리호 사장님이 주선해주신 과일과 맥주파티로 마지막밤을 보낸다.


4일(2011. 5. 16.월).

08 : 35. 인천항도착.
10 : 40. 인천 터미널도착.
12 : 50. 천안도착.

9시 도착 예정보다 빠르게 인천항에 도착하여 지체없이 바로하산해서
미쳐 뒤에 나온 산우님들과는 인사도 못나누고 인천 터미널로 나와마트에 들렸다 매표소로가니
지난 3월에도 매표창구가 있더니지금은 천안행은 자동발권을 하란다.

자동발권해 11시 30분 차인줄알고 빵먹고 나서 차표를 자세히 보니 11시 차인걸 11시 30분차로 잘못봤다.
이젠 눈도 시원찮아져 이런일도 생기니 나도 이제 늙긴 늙었나본데 마눌한테 컴퓨터땜시 눈다 버렸다고 한소리 또들었다.


지난 2005년 봉황산가던해 봄부터 써온 디카가 병원에도 몇 번 갔다왔지만 지금은 눈뜨기도 힘들어 삐꺽거리니
아무래도 이번엔 보내줘야할것같다.너도 주인 잘못만나 그동안 참 고생이 많았다.
한번산행에 시간체크하고 기록하느라 보통 250장에서 300장정도 사진을찍어한산행기에 보통 80장에서 100장의사진을 올리는데
한달에 8~10번 잡으면 한달에 2000장,1년이면 20000장 이 똑딱이가 만 6년 됐으니 10만장은 족히 찍었나보다.

산경표를 따라서 (http://cafe.daum.net/yul6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