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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산.

실크로드 13. 서역으로 가는 길목 양관(陽關)과 돈황고성.

실크로드 13.서역으로가는 길목양관(陽關)과 돈황고성.

◈ 일시 : 2007. 9. 29~10 .7일 (8박 9일).

◈ 위치 : 중국 제일 서쪽의 신장위그루자치구와간쑤성.

◈ 여행코스: 인천공항 →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신강 위그루자치구 박물관. 천산천지)→투루판(吐魯番토로번)
(고창고성,아스타나 고분군,베제트릭 천불동,카레즈,교하고성,소공탑,포도농원,화염산,토욕구 천불동)

산산(鄯善:
선선)(쿠마타크사막)→하미(哈密 합밀)(마귀성,빠리쿤초원,회왕릉)→둔황(敦煌 돈황)
(돈황고성,양관,명사산,월야천,막고굴)
→우루무치(烏魯木齊 오노목제)(홍산공원,남산목장,국제바자르)→인천공항.

◈ 지도 : 중국지도.눌러 보세요.
간쑤성지도. 눌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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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실크로드의 핵심인 둔황과 신장자치구의 위치를 그려본 것이다.

실크로드 전체루트.붉은점표시한곳이 이번에 들린곳이다.

실크로드. 눌러 보세요. 좀 크게 잘라본 그림이다. 붉은점표시한곳이 이번에 들린곳이다.

실크로드를 입체적으로 그려 이해를도운 그림이 있길래 퍼온 그림이다.

둔황 Dunhuang (敦煌, 돈황)

중국 간쑤 성[甘肅省 감숙성] 서부에 있는 도시로 주천지구(酒泉地區)에 속하는 현청소재지로 인구 18만명이살고있고 99%가 한족이다.
돈황은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사이에낀 오아시스 도시로 중국 서쪽의 관문이다.
장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는 돈황에서 천산북로와 천산남로 두갈래로 나누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다.
중국인 거주지의 서쪽 끝에 해당하며, 서양에서 중국 통치영역으로 들어가는 외국상인들이 처음으로 거쳐가는 교역도시이기도 하다.


돈황이라는 이름은 '크게 번성한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 그대로 고비사막의 오아시스도시로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특히 당대 7세기부터 8세기 중엽에 걸쳐 가장 왕래가 성해 동서무역의 중계지점으로서 문화의 꽃을 피우며 세계적인 '돈황예술'을 창출했다.
이미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막고굴의 천불동이 그 예다.
그 밖에 이곳의 볼거리로 막고굴을 비롯해 사주성(沙洲城), 백마탑(白馬塔),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 월아천(月牙泉) 등이 있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25km에 실크로드 최대의 성지 돈황 막고굴이 있다.
막고굴은 4세기에 시작돼 14세기에 이르기 까지 1000년의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석굴이 지어졌다.

막고굴은 366년 동쪽에서 온 한 승려가 수행과 공양을 위해 석굴을 파면서 시작됐고 대부분은 돈황의 호족과 실크로드 각지의 왕족들의 기증에 의해 만들어 졌다.
비단을 가득 실은 낙타들을 몰고 가는 대상들과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향하던 승려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건너기 전,
바로 이곳에서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장도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무사 안녕을 비는 기도처였고 서역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휴게소였다.

돈황의 기후는 중국 북서쪽의 대륙성 기후대에 속해 여름에는 덥지 않으나 매우 건조하며, 겨울에는 평균 영하 9~1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춥다.
건조한 여름이지만 이 도시에 들어서면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백양나무의 푸른 잎새는 단조로운 사막의 풍경과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새로움을 준다.
이 나무는 원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흔히 오아시스 도시의 주변에 많이 늘어서 있는데, 돈황의 백양나무 너머에는 옥수수밭과 보리밭, 목화밭 등이 펼쳐져 있다.
아침,저녁간 기온차가 극심하고 건열풍과 흑사폭풍 등의 자연재해가 있기 때문에 선글라스와 모자, 모래바람을 막을 두건은 필수품으로 꼭 챙겨야 한다.
대체로 5월에서 10월 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돈황의 평균적인 기후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8.1 -3.4 4.8 12.6 18.6 22.9 25.0 23.8 17.4 9.2 0.5 -6.5
최고기온(°C) -1.0 4.4 13.2 21.0 26.9 31.0 32.9 32.0 26.7 18.8 7.9 0.0
최저기온(°C) -15.1 -11.0 -3.3 3.8 9.5 13.7 16.2 14.8 8.3 0.6 -5.8 -12.6
평균강수(㎜) 0.8 1.2 1.7 2.5 3.2 7.4 12.3 6.3 1.9 0.6 0.8 0.9

돈황시내 관광지 약도다.

◈ 일정정리.

10.4(목).6일.둔황
10 :00. 호텔출발 서쪽으로 25분거리의 돈황고성으로.
10 :25~11 :15. 둔황고성.
11 :15~11 :56. 시내 남서쪽 70km거리의 양관으로 이동.(1시간 40분거리)
11 :56~13 :30. 양관고성.
13 :30~14 : 30.양관아래 포도 농원에서 점심.


14 :30~15 :30.돈황시 남쪽 5km거리의 명사산으로 이동.
15 :30~17 :51. 명사산과 월아천.
17 :51~22 :00. 낙타발바닥요리로 저녁먹고 발 맛사지.
22 :00~ 태양호텔로 돌아와 투숙.

◈ 여행후기.

◇둔황고성

돈황에서 처음맞는 아침이다.8,9,10이란다. 8시 모닝콜, 9시식사,10시출발.
산악회에서 다니는 여행일정이라면 벌써 한두군데는 다녀왔을 늦은 시간이다.
습관대로 일찍 일어나서 호텔주변에있는 과수원도 들려보고 어슬렁거리다 아침을 먹고
10시에 회태양촌주점을 출발해 양관가는길에 먼저 돈황고성을 들린다.

둔황고성 (敦惶古城)

둔황의 서쪽 25km에 있고 이곳은 중일 합작으로 만들어진 일본인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둔황>을 영화로 찍을 때 만든 세트장으로 1987년에 제작되었다.
규모는 동서 718m, 남북 1132m가 되고 송나라 당시의 성을 재현한 곳으로그 시대의 온갖 가게와 건물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돈황고성의 건축풍격은 서역의 운치 속에 동,서,남으로 난 세개의 성문과 성루가 우뚝 솟아있다.
성내에는 고창, 돈황, 감주, 흥경, 변량 5개의 주요도로를 조성해 놓았으며, 도로 양편으로는 불당과 전당포, 창고, 주점, 주택 등이 지어져 있다.
많은 영화와 역사극 등이 이곳에서 촬영하였다.한국의 해신도 이곳에서 촬영했고 우리가 갔을때도 "좋은놈 00놈 00놈"의 촬영팀을 환영한다는 안내판이 있었고
시내에서 촬영팀을 만났다.

재미있는 일화는 "둔황" 영화를 다찍고 일본에선 이 돈황고성을 파괴하여 없애려고했는데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자 이번엔 불태워서 깨끗이 없애겠다고하니까
중국정부에선 불태워 없애는것은 좋으나 타고남은 재까지도 완전히 가져가고 원래의 땅 모양으로 원상회복을 시켜놓으라고하니 별수없이
두손들고 그대로 가서 지금은 이것을 가지고 두고두고 돈벌이를 하고있다.

이틀간묵은 태양촌 호텔. 시내에서 좀 떨어져있다.

태양촌 호텔.

태양촌 호텔의 배밭.정지,전정을 않고 적과를 안해서 다닥다닥붙어있다.

태양촌 호텔 로비의 천정장식.

태양촌 호텔 로비의 막고굴벽화.

목화밭과 비닐하우스. 돈황의 주요 재배작물이다.

돈황 고성(敦惶古城). 이곳은 중일 합작으로 만들어진 일본인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둔황>을 영화로 찍던 셋트장이다.

돈황 고성(敦惶古城).송나라 당시의 성을 재현한 거리다.

돈황 고성(敦惶古城). 규모는 동서 718m, 남북 1132m가 된다.

돈황 고성(敦惶古城).

돈황 고성(敦惶古城).

돈황 고성(敦惶古城).

돈황 고성(敦惶古城).

해신의 사진들이다.여기서 촬영한 영화의 사진들을 영화별로 전시돼있다.

옛날엔 돈황을 沙州 투루판은 火州라고 불렀다.

돈황 고성(敦惶古城).

돈황 고성(敦惶古城). 대여해주는 옷을입고 즐거워하는 꼬마들.

돈황 고성(敦惶古城).

돈황 고성(敦惶古城). 여기서 촬영한 영화들. 맨끝에 해신이 있다.

經壽寺.

經壽寺의 천수천안불상.

망월루와 두부방.

성루에서 본 돈황 고성(敦惶古城)전경.

성루에서 본 돈황 고성(敦惶古城)전경.

성루에서 본 돈황 고성(敦惶古城)전경.

◇ 서역으로가는 길목양관(陽關).

둔황고성을 둘러보고 서역으로 통하는 서역남로의 관문인 양관으로 간다.
다시끝없는 사막길이 이어지고 사막끝에 바다같은것도 보이는데 신기루란다.
옥문관갈림길를 지나 좀가니
돈황시의 젓줄인 당하저수지옆으로 마치부처님이 누워계신듯한 산세를한 천연수불(天然睡佛)이 보인다.
가이드가 머리,가슴, 배를 짚어주니 그럴듯하다.이런모습은 성도의 낙산대불이 모셔진 뒷산도 마찬가지였다.
양관가는길가 사막언덕위엔 삼장법사와 손오공일행들의 조형물이 있는데 손오공 고향이 여기라나?
좀더 가면 포도밭과 식당들이 있는 작은오아시스마을을 지나고 몇분 더 가니 양관이다.

돈황 고성(敦惶古城)에서 양관(陽關)으로 가는사막길. 바다가 보이는가했더니 신기루란다.

당하저수지옆의 천연수불(天然睡佛).산이 부처님이 누운형상을 하고있다.

양관(陽關)가는길의 오아시스마을.양관을 나올때 점심을먹었다.포도가 아주 깨끗하고 달았다.

서역으로 가는 길목, 양관(陽關古城)

돈황은 인도, 이란과 통하는 중국고대 통로로서 옥문관과 양관은 그 통로의 중요한 열쇠였다.
돈황시에서 남서쪽으로 70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대에 만들어진 실크로드 길목으로 서역 남도(南道)의 입구이다.
둔황은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다.

둔황을 나서면 우름치로 향하는 천산북로와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향하는 오아시스로가 갈라진다.

오아시스로는 다시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천산의 남쪽을 따라 하미, 투르판, 쿠얼러,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천산남로 혹은 서역북도와 타클라마칸의 남쪽, 곤륜산맥 북쪽을 따라

민펑, 호탄,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서역남도로 다시 갈라진다.
양관의 陽은 옥문관의 남쪽이란 뜻으로 남쪽=태양 陽關이라고 부른다.

양관의 다른 이름은 고동탄(古董滩)으로 큰 바람이 지나간 후에 보석과 골동품이 사막에서 많이 발견되었던 곳으로,
그 곳에 가면 뭐든지 골동품 한 두개는 건진다(进了古董滩,空手不回还)라는 말이 있었답니다.
아마도 옛날에는 꽤 번성했지만 모래에 묻혀버린 곳인 모양입니다.


요 근래인 2003년에 옛 양관모양을 재현해놨다.
성루를 지나면 서역 실크로들를 처음 개척한 장건[張騫, ?~BC 114]의 서역출발동상이 있고 옆엔 유물관이있다.
또한문을 들어서면 이젠 서역으로 들어온 셈이고 여기가 옛날의 출입국관리소로
당나라복장을한 국무원이 돈을받고 기념으로 출입국 증명서도 발급해준다.
서역땅으로 들어서면 우측엔 그 유명한 왕유의 시귀가적힌 동상이있고 뒤로 서역으로 이어지는 양관로가 이어진다.

봉화대가있는 산언덕으로 올라가려면 말이나 전동차를타고 올라야한다.

양관(陽關)성루.
양관의 다른 이름은 고동탄(古董滩)으로 큰 바람이 지나간 후에 보석과 골동품이 사막에서 많이 발견되었던 곳으로,
그 곳에 가면 뭐든지 골동품 한 두개는 건진다(进了古董滩,空手不回还)라는 말이 있었답니다.

양관(陽關)입구.2003년에 새로 복원해 놓은것이다.

장건 [張騫, ?~BC 114]의 서역출발상.
장건은 BC 139~BC126년에 처음으로
중국에서 서역으로의 교통로를 공식개통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지휘봉(?)에 매단 수술이 보통장수는 5개인데 장건은 7개란다.

한무제()의 명을 받고 흉노를 협공하기 위해, 일리강() 유역에 있던 대월지()와 동맹하고자 BC 139년경 장안을 출발하였다.
도중에 흉노에게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대완()·강거()를 거쳐 이미 아무다리야 북안으로 옮긴 대월지에 도착하였다(BC 129년경).
그러나 대월지는 흉노를 칠 의사가 없어 동맹에 실패하고 귀국하던 중 다시 흉노의 포로가 되었다가 BC 126년 귀국하였다.
BC 119년 이리 지방의 오손()과 동맹하기 위해 다시 파견되었는데, 그 곳에서 그가 파견한 부사(使)들이 서역 제국의 사절·대상()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으로 서역의 지리 ·민족 ·산물 등에 관한 지식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동서간의 교역과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돈황시에서 남서쪽으로 70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대에 만들어진 실크로드 길목으로 서역 남도(南道)의 입구이다.

양관(陽關)의 陽은 옥문관의 남쪽이란 뜻이란다. 남쪽=태양 (陽)을 의미한다.

서역으로가는요즘의 출입국관리소다.
지금도 돈을 내면 기념으로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서역으로 들어가는문이다.뒤에 중국의 3대 시인인 왕유동상이 보인다.

옛날 군영과병정기를 재연해놨다.

이태백,소동파와함께 중국의 3대 시인인 왕유(王維)의동상이다.

送元二使安西 / 王維 (송원 이사안서/왕유)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위성조우읍경진,객사청청유색신)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권군경진일배주,서출양관무고인)

원씨네 둘째를 안서로 보내며 / 왕유

위성의 아침 비가 흙먼지를 가라앉히니

객사의 푸른 버드나무가푸르름을 더 하는구려

그대여 이 술 한잔 더 드시게

양관을 나서 서역으로가면 아느 이도 없을 터이니


渭城은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시안)부근의 함양인데
당시엔 서역으로 떠나는 출발지가 장안이었다.

양관(陽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봉화대가 멀리 보인다.
말이나 낙타나 전동차를 타고간다.


전동차를타고 봉화대앞에 오르면 양관표석과 일자로 회랑을 만들어 전망대를 만들어 놨다.
양관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봉화대가있고 사발팡방이 사막이다. 옛날 기약없는 님을 보내는 이별을하던곳이고
머나먼 천축으로갔던 현장법사도 신라의 혜초도 아마 이곳을 지났을것이고 그 사막만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몹시 춥다.

양관(陽關)의 봉화대.갈대를섞어서 만들었단다.

봉화대아래의 양관고지

오아시스마을과 사막.

이사막길로 현장법사도 ,신라의 혜초스님도 천축으로 갔을것이다.

여기서 살아서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님을 보내는 이별을 했을것이다.

양관고지(陽關故址)표석.바람이 많이 불어서 춥다.

새로 복원한 양관(陽關)전경.

다시 전동차를타고 내려와 아랫마을 포도밭에서 점심을먹고 싱싱한포도도 한 보따리사서 다음날까지 먹었다.
투루판보다 훨씬 공기가 깨끗해서 포도도 깨끗한게 맛이 무척달다.

점심을 먹은 아랫마을.여기 포도가 투루판것보다 훨씬달고 깨끗하다.

당나귀 마차.

삼장법사와 손오공일행.여기가 손오공의 고향이라나?

오후 일정인 명사산으로 간다.
원래는내일 아침에 명사산을가고 내일 오후에 막고굴을 간다는것을 일정을 바꿔 오늘가고
내일은 막고굴가고 시간이 나면 시내구경을 하기로했다.
내일아침에 명사산가면 모래먼지 뒤집어쓴 몸으로 막고굴가고 밤차로 우루무치로가서는 다음날 밤에 비행기타면
그 모래먼지를 씻지도 못하고 이틀간돌아다니고 한국까지 가야한단말이냐?
도대체 생각도 없고 멍청하긴...강력하게 얘기해서 일정을 바꾼것이다.
막고굴도 그렇다 .막고굴은 예약을해야 한국어 해설자가 나오는데 비가오면 막고굴자체가 문을 안연다.
그러면 돈황에 와서 첯날에 막고굴을 봐야지 만에하나 비가오면 다음날에 또 기회가있지
우리같이 마지막날 잡아놓으면 비가오면 황이다.물론 돈황의 날씨가 비오는날이 얼마안된다고해도
실제로 어제저녁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가? 비는 올려고 잔뜩 찌프리고 돈황오던날은 억수로 쏟아지고...
만약에 여기와서 비가와서 막고굴을 못간다면 실크로드 헛 왔다간것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