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골지맥 1구간(도솔산(1147.8m)-항령-두밀령-성골령).
◈ 산행코소와 거리 및 소요시간 : GPS 거리 30.96km(진입6.5km포함). 11시간 17분.
양구 돌산령터널(453도로)-대암샘터-돌산령(도솔지맥)-도솔산(1147.8m).성골지맥분기점-453도로-
872.1m(인제405삼각점)-비둑고개(평화누리길)-수리봉갈림봉-수리봉입구비포장도로 삼거리. 철문-
두밀령(788.3m)-항령(460번도로 도고터널위)-UN봉(849m)-756.5m삼각점봉-성골령(城谷嶺.2차선도로).
◈ 일시 : 2014. 10. 1(수).
◈ 날씨 : 흐림. 단풍이 들기 시작했고 시계는 별로이나 산행하긴 좋음.
◈ 동행인 : 5명. 한상훈님.최상진님.이선우님.강형태님. 박종율.
◈ 경비 : 교통비 43000원 + 숙박,식대.
◈ 지도.
성골지맥 1구간(도솔산(1147.8m)-항령-두밀령-성골령).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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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
◈ 일정정리.
9.30일(화).
17 ; 50. 천안에서 동서울행 버스(6000원)
19 ; 35. 동서울에서 최상진님과 강형태님과님을 만나 양구행 막차를 탐(12300원)
21 ; 25. 신남,남면경유하여 양구도착.1시간 50분걸림. 터미널옆 황해여관숙박(3만원).한상훈님.이선우님 합류.
10.1일(수).
06 : 40. 돌산령까지 택시가 28000원이라는데 5명이라 해안가는 버스를 탐(카드 3100원.현금3200원)
07 ; 06/8. 돌산령터널을 지나 삼거리에서 하차하여 구도로 따라 오름.7726-1부대 5.1km 이정표.
07 : 32. 방호벽을 지나고. 구비구비 돌아 올라감.
07 ; 55/59. 대암샘터.표석과 877m 수준점.화장실.물 마시는요령과 수질검사표.
08 ; 02. 해안면분지와 가칠봉으로 이어가는 도솔지맥능선이 보임.
08 ; 05. 바로소 도솔산과 1304m봉의 중계탑들이 보임.
08 ; 11. 전망대쉼터 테크.올라온 도로와 해안면.도솔산과 1304m봉,돌산령이 조망됨.
08 ; 15. 호국 도솔암입구.가칠봉가는길 팻말.지정된 길 이외는 가지 말라는 경고판
08 ; 17. 돌산령 고갯마루.옛 돌산령 버스 정류장.우측은 7726-1 군부대 정문. 갈 수있는 도솔지맥 최북단 마루금이다.
돌산령터널에서 5.8km로 부지런히 걸었어도 1시간 9분 걸렸다.택시로 가면 여기까지 바로 갈 수있다.
도솔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도솔산 출입을 막는 아무런 표지나 방해물이 없어 바로 도솔산으로 올랐다.
08 : 25. 노출지역을 벗어나 숲으로 들며 가칠봉으로 이어가는 갈 수 없는 도솔지맥을 가늠해보고 한오름 더 올려챈다.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삼각점(인제407란다).무적해병의 신화를 낳은 도솔산지구 전적비와 안내판.
북쪽 가칠봉.대우산.백두대간 무산쪽. 을지전망대. 해안펀치볼. 사명산. 성골지맥.양구읍등주변이 다 조망된다.
위령비쪽으로 돌아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단체사진 찍고 성골지맥을 시작함.
08 : 56. 내림길에 산양 조형물. 아랫마을 팔랑리에 산양증식복원쎈터가 있고 산양은 양구군 상징돌물이다.
09 : 01. 경사지를 내려간 헬기장. 우측으로 위령비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갈린디.
09 ; 05/7. 약 1051m되는 조망봉.교통호.도솔산.위령비쪽 대우산 ,가칠봉,갈 능선이 조망.교통호따라 내려감.
09 ; 18. 쭈욱 내려가 철기둥있는 둔덕봉을 넘으며 다시 한번 도솔산과 돌산령 오르는 도로,갈 맥을 본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09 ; 42. 453도로. 도로가 < 으로 꺽이는 지점이다.표고 779m. 이동통신탑. 도로준공비. 임도따라 산불초소쪽으로 오름
09 ; 46/7. 산불초소.지나온능선과 도솔지맥.팔랑리. 사명산 갈 지맥이 조망된다.
09 : 48. 임도끝 잣나무밭.텐트가 하나 쳐 있고 사복 여군1명 남자 사병 2명.처음엔 잣나무 관리하는 사림인줄 알았더니
외츨나온 군인인듯한데 상부에 보고 해야한다하여 평화누리길 간다하고 대표자 이름과 인원만 얘기하고 갔는데...
(나중에 상황을 보니 평화누리길 가는것을 양구군청에 신고하고 가야하는듯).우측에 지뢰팻말걸린 철조망이 이어진다.
09 ; 59. 한오름 올라서 뒤로 온길을 조망하고 정점은 5분쯤 더 나가 있다.
10 : 15/16. 872.1m.헬기장.글자는알 수 없는 삼각점(인제405란다).도솔산부터 온 지맥과 사명산쪽이 보인다.
뒤에서 좀전에 만났던 여군과 사병들이 부르는듯한 "어르신" "어르신"하고 부르는 소리가 연신 난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뒤에오는 일행들에 우로 꺽어지라 이르고 꽁지가 빠지게 내 달린다.
한참후에 소리가 안들리는 것을 보니 871.2m봉에서 좌측능선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10 ; 42. 봉을 넘어 쭈욱 내려가면 좌측으로 파란지붕의 군부대와 그뒤로 갈맥이 보이고
10 : 44. 내려오면서 줄곳 우측 골 물이 앞쪽으로 흘러 잘못왔나 걱정했는데
여기와서 내려온 능선과 도솔산이 뒤로 보이고 우측골 물이 저앞에서 우측으로 빠지는게 보여 안심이 된다.
10 : 49. 전차.좌측으로 월운리 마을과 비둑고개로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비둑고개 위로 군 교통호들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10 ; 51. 글자판없는 삼각점이 길가에 있고 화생방 신호규정 안내판과 참호가 나오고 교통호따라 급경사로 내려간다.
10 : 52. 비둑고개. 비포장도로.좌측은 쎄멘트 방호벽. 좌우에 군부대 철망 울타리.로프줄 잡고 올라 교통호따라 쭈욱 올라간다.
비득고개정상입니다.해발 529m. 우 두타연 8km,좌 월운저수지 4.1km이정표.<평화누리길인듯>.지도는 비죽고개다.
31번도로가 좌측(남) 저 아래 두밀리서 끝난다.
11 : 00. 교통호 오름길에 뒤로 872.1m봉부터 지나온길과 그뒤로 도솔산이 보이고 우측 두타연쪽이 조망됨.
11 ; 08. 중턱의 넓은 벙커봉위 헬기장.도솔산부터 온 지맥조망. 여기서부터는 숲속 오솔길 오름길이된다.
11 : 35/6. 좌측 아래로 773.1m 갈림길.호옆에 글자없는 삼각점. 표고 815m를 가르킨다.
11 ; 49/52. 통나무계단을 오른 헬기장 공사중.수리봉정상과 뒤로 도솔산.대우산,가칠봉,비둑고개가 보인다.
11 ; 55. 걷어낸 원형철조망을 지나고.
12 : 00/03. 수리봉갈림봉(957m). 좌측 아래는 뺑 두른 철조망. 우측은 유해발굴지.우측으로 나가보면 수리봉정상이 건너다 보임.
지나온 이 일대가 6.25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피의능선" 인듯.좌측으로 내려감.
12 ; 06/34. 점심.
12 ; 36. 걷어낸 원형철조망을 지나고.
12 ; 41. 우측 바로 아래로 수리봉 올라가는 도로가 보이고 이어 수리봉이 올려다 보인다.
12 : 47. 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며 화살표(←) 세멘기둥이 보인다.
12 : 57. 맥길이 시원찮아 우측 바로 아래의 세멘도로로 내려서 마루금과 나란히 가는 도로따라 내려갔다
13 ; 03. 수리봉진입도로 삼거리.철문옆에 수리봉 차량운행 안전수칙과 경고판이 있다. 마루금따라 내려오면 철문 좌측으로 내려온다.
좌측으로 도로따라 내려가면 월운리 3`1번도로의 피의능선전투전적비가 되겠다.우측 수렛길로 감.
13 : 33. 우측 구방산로 가는 수렛길을 따라가다 바로 능선으로 붙어 쭈욱 올라간 762m봉.군사훈련용1/2500 모형도.
13 ; 35. 765m. 좌틀하며 저앞쪽에 두밀산과 비슷한높이의 봉 3개가 보인다.
13 ; 54. 봉을 두어개 넘어 임도에 내려서기전봉(약 720m).벙커위에 큰 소나무. 두밀령이 저 건너편에 올려다 보인다.
13 ; 58. 임도. 좌측은 자갈.잠시 임도따르다 좌측 산길로 든다.
14 : 05. 벙커봉을 넘고.
14 ; 12. 제일높은 두밀령(杜密嶺.788.3m).벙커위에 삼각점(글자는 안보이는데 인제301이란다).
좌측은 월운리로 가는 길이고 맥은 우측으로 내려간다
14 : 15/21. 바위그늘에서 잠시 숨돌리며 성골령까지 가기로 합의.
14 : 23/25 조망좋은 헬기장.항령 넘어 UN봉과 사명산. 도솔지맥능선. 성골지매끝을 짐작해봄.
14 ; 34. 우측으로 805m능선분기.좌로 내려감. 좌사면길 있음.
14 : 49. 군사시설물보호구역 말뚝이 나오기 시작함.
15 ; 02. 엄청큰 나무들을 이고 있는 벙커봉을 넘고
15 ; 12. 화생방종과 천막터가 있는 삼면봉에서 우측으로 타이어 계단을 내려가고
15 ; 17. 헬기장. 도고터널위. UN봉의 통신탑이 올려다 보인다.
15 : 19/20. 항령(項嶺). 비포장도로.군 삼각점(333FOB).산나물 불법채취 특별단속 현수막.
15 : 21. 이동통신탑.
15 : 23/27. 헬기장.백호터널위.
15 ; 44. 임도 삼거리.좌 유엔고지.우 733고지 나무팻말. 직등해 오름
15 ; 52. 폐 산불초소.건전지 갈아 끼우고 된비얄을 오름.
16 ; 03/07. 849m봉. 산불초소와 산불감시탑. UN봉 표지.도솔산부터 온길과 갈길,도솔지맥조망
16 : 11. 군도로는 좌측으로 내려가고 앞봉엔 통신탑. .여기서 우측으로 길따라 내려가는게 편하다.
16 : 14. 한국통신 통신탑봉.표고 815m.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길 없다.<좌측 능선주의>
16 : 28. 771m봉. 헬기장. 우측으로 꽃봉(576.6m)능선분기.좌로 내려가며 좌측 사면길 있다.
16 ; 36. 솔숲길을 가며 좌측으로 통신탑봉과 UN봉이 보이고
16 : 42. 안부부터는 통신 삐삐선에 철사줄이 나오는데 통신삐삐선은 성골령끼지 계속된다.
16 : 58/06. 730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고
17 ; 15/17. 756.5m. 삼각점(양구22. 1986재설).뒤론 유엔봉이 앞쪽으론 사명산과 파로호가 보인다.
좌로 꺽어 암릉 →로프을 내려간다.
17 : 31. 약 660m봉. 봉을 넘어서며 저앞에 뾰족봉이 보이고 갈길은 먼데 어둡기전에 내려가려고 서두른다.
17 ; 39. 오름길에 756.5m.삼각점봉과 UN봉을 뒤돌아보고 급경사 암릉을 오른다.
17 : 52. 약 622m암봉.뒤로 유엔봉부터 지나온 능선과 앞으론 성골령과 갈맥이 내려다 보인다.
17 : 58/00. 절벽바위를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며 해는 꼴깍하는데 아직 봉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18 : 10. 막사터와 쇠기둥이 있는 마지막 573m봉을 넘으니 GPS도 야간 모드로 들어간다.
18 ; 15. 앞의 성골령 절개지는 내려갈수 없다하여 세멘벽돌 경계초소에서 좌측으로 내려감.
우측 넘어로 성골령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18 : 17. 2차선도로.4260S 521전주.도로따라 우측 성골령으로가며 보니 역시 내려올곳이 없다.
18 ; 21. 성골령. 城谷嶺 표석.도로가 <자로 꺽어간다.지나온 능선이 보이고 절개지는 내려 올 수 없다.
18 : 24/35. 날이 어두워졌다.다시 521전주로 가서 후미를 인도한다.7시 20분 차를 탈려면 시간이 없는데
후미는 아직이다. 강회장님은 택시를 호출하고 나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먼저 내려가 여관에 맞긴 짐찾고.
19 ; 10. 후미가 겨우겨우 택시로 터미널에 도착했다(택시 17000원).
19 ; 20. 강형태님. 한상훈님과 나 3명은 동서울행 버스 타고,이선우닌. 최상진님은 7시 40분 춘천행 버스를 탄다.
21 : 08. 동서울도착(12300원).
21 : 15. 천안행 버스탐(6000원)
22 : 35. 천안도착.
◈ 산행후기.
※도솔산(1147.7m)분기봉-비둑고개-수리봉진입도로삼거리.17km.5시간 55분.
06 : 40. 돌산령까지 택시가 28000원이라는데 5명이라 해안가는 버스를 탐(카드 3100원.현금3200원)
07 ; 06/8. 돌산령터널을 지나 삼거리에서 하차하여 구도로 따라 오름.7726-1부대 5.1km 이정표.
07 : 32. 방호벽을 지나고. 구비구비 돌아 올라감.
07 ; 55/59. 대암샘터.표석과 877m 수준점.화장실.물 마시는요령과 수질검사표.
08 ; 02. 해안면분지와 가칠봉으로 이어가는 도솔지맥능선이 보임.
08 ; 05. 바로소 도솔산과 1304m봉의 중계탑들이 보임.
08 ; 11. 전망대쉼터 테크.올라온 도로와 해안면.도솔산과 1304m봉,돌산령이 조망됨.
08 ; 15. 호국 도솔암입구.가칠봉가는길 팻말.지정된 길 이외는 가지 말라는 경고판
08 ; 17. 돌산령 고갯마루.옛 돌산령 버스 정류장.우측은 7726-1 군부대 정문. 갈 수있는 도솔지맥 최북단 마루금이다.
돌산령터널에서 5.8km로 부지런히 걸었어도 1시간 9분 걸렸다.택시로 가면 여기까지 바로 갈 수있다.
도솔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도솔산 출입을 막는 아무런 표지나 방해물이 없어 바로 도솔산으로 올랐다.
08 : 25. 노출지역을 벗어나 숲으로 들며 가칠봉으로 이어가는 갈 수 없는 도솔지맥을 가늠해보고 한오름 더 올려챈다.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삼각점(인제407란다).무적해병의 신화를 낳은 도솔산지구 전적비와 안내판.
북쪽 가칠봉.대우산.백두대간 무산쪽. 을지전망대. 해안펀치볼. 사명산. 성골지맥.양구읍등주변이 다 조망된다.
위령비쪽으로 돌아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단체사진 찍고 성골지맥을 시작함.
08 : 56. 내림길에 산양 조형물. 아랫마을 팔랑리에 산양증식복원쎈터가 있고 산양은 양구군 상징돌물이다.
09 : 01. 경사지를 내려간 헬기장. 우측으로 위령비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갈린디.
09 ; 05/7. 약 1051m되는 조망봉.교통호.도솔산.위령비쪽 대우산 ,가칠봉,갈 능선이 조망.교통호따라 내려감.
09 ; 18. 쭈욱 내려가 철기둥있는 둔덕봉을 넘으며 다시 한번 도솔산과 돌산령 오르는 도로,갈 맥을 본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09 ; 42. 453도로. 도로가 < 으로 꺽이는 지점이다.표고 779m. 이동통신탑. 도로준공비. 임도따라 산불초소쪽으로 오름
09 ; 46/7. 산불초소.지나온능선과 도솔지맥.팔랑리. 사명산 갈 지맥이 조망된다.
09 : 48. 임도끝 잣나무밭.텐트가 하나 쳐 있고 사복 여군1명 남자 사병 2명.처음엔 잣나무 관리하는 사림인줄 알았더니
외츨나온 군인인듯한데 상부에 보고 해야한다하여 평화누리길 간다하고 대표자 이름과 인원만 얘기하고 갔는데...
(나중에 상황을 보니 평화누리길 가는것을 양구군청에 신고하고 가야하는듯).우측에 지뢰팻말걸린 철조망이 이어진다.
09 ; 59. 한오름 올라서 뒤로 온길을 조망하고 정점은 5분쯤 더 나가 있다.
10 : 15/16. 872.1m.헬기장.글자는알 수 없는 삼각점(인제405란다).도솔산부터 온 지맥과 사명산쪽이 보인다.
뒤에서 좀전에 만났던 여군과 사병들이 부르는듯한 "어르신" "어르신"하고 부르는 소리가 연신 난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뒤에오는 일행들에 우로 꺽어지라 이르고 꽁지가 빠지게 내 달린다.
한참후에 소리가 안들리는 것을 보니 871.2m봉에서 좌측능선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10 ; 42. 봉을 넘어 쭈욱 내려가면 좌측으로 파란지붕의 군부대와 그뒤로 갈맥이 보이고
10 : 44. 내려오면서 줄곳 우측 골 물이 앞쪽으로 흘러 잘못왔나 걱정했는데
여기와서 내려온 능선과 도솔산이 뒤로 보이고 우측골 물이 저앞에서 우측으로 빠지는게 보여 안심이 된다.
10 : 49. 전차.좌측으로 월운리 마을과 비둑고개로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비둑고개 위로 군 교통호들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10 ; 51. 글자판없는 삼각점이 길가에 있고 화생방 신호규정 안내판과 참호가 나오고 교통호따라 급경사로 내려간다.
10 : 52. 비둑고개. 비포장도로.좌측은 쎄멘트 방호벽. 좌우에 군부대 철망 울타리.로프줄 잡고 올라 교통호따라 쭈욱 올라간다.
비득고개정상입니다.해발 529m. 우 두타연 8km,좌 월운저수지 4.1km이정표.<평화누리길인듯>.지도는 비죽고개다.
31번도로가 좌측(남) 저 아래 두밀리서 끝난다.
11 : 00. 교통호 오름길에 뒤로 872.1m봉부터 지나온길과 그뒤로 도솔산이 보이고 우측 두타연쪽이 조망됨.
11 ; 08. 중턱의 넓은 벙커봉위 헬기장.도솔산부터 온 지맥조망. 여기서부터는 숲속 오솔길 오름길이된다.
11 : 35/6. 좌측아래로 773.1m 갈림길.호옆에 글자없는 삼각점. 표고 815m를 가르킨다.
11 ; 49/52. 통나무계단을 오른 헬기장 공사중.수리봉정상과 뒤로 도솔산.대우산,가칠봉,비둑고개가 보인다.
11 ; 55. 걷어낸 원형철조망을 지나고.
12 : 00/03. 수리봉갈림봉(957m). 좌측 아래는 뺑 두른 철조망. 우측은 유해발굴지.우측으로 나가보면 수리봉정상이 건너다 보임.
지나온 이 일대가 6.25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피의능선" 인듯.좌측으로 내려감.
12 ; 06/34. 점심.
12 ; 36. 걷어낸 원형철조망을 지나고.
12 ; 41. 우측 바로 아래로 수리봉 올라가는 도로가 보이고 이어 수리봉이 올려다 보인다.
12 : 47. 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며 화살표(←) 세멘기둥이 보인다.
12 : 57. 맥길이 시원찮아 우측 바로 아래의 세멘도로로 내려서 마루금과 나란히 가는 도로따라 내려갔다
13 ; 03. 수리봉진입도로 삼거리.철문옆에 수리봉 차량운행 안전수칙과 경고판이 있다. 마루금따라 내려오면 철문 좌측으로 내려온다.
좌측으로 도로따라 내려가면 월운리 3`1번도로의 피의능선전투전적비가 되겠다.우측 수렛길로 감.
양구관내 버스 시간표.
06 : 40. 돌산령까지 택시가 28000원이라는데 5명이라 해안가는 버스를 탐(카드 3100원.현금3200원)
07 ; 06/8. 돌산령터널을 지나 삼거리에서 하차하여 구도로 따라 오름.
해안쪽 모습.
돌산령터널.
07 ; 55/59. 대암샘터.표석과 877m 수준점.화장실.물 마시는요령과 수질검사표가 있다.
해안면모습.
해안면(亥安面).PUNCH BOWL.
해안면(亥安面)은 현리 • 오유리 • 만대리 • 후리 • 월산리 • 이현리로 구성되어있다.
해안(亥安)이라는 지명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다. 그 당시 해안은 해자를 바다해(海)를 썼으며 해안 분지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초에 해안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스님에게 지역사정을 소상히 말하고 뱀을 없앨 방도를 구하니 그 스님이 뱀과는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어 쓰면 뱀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해안을 돼지해(亥)자로 바꾸고, 많은 주민들이 돼지를 많이 기르게 되자,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전해지며 이런 이야기로 볼 때 전혀 사실 무근은 아닌 것 같으며 현재도 해안지역에는 높은 산을 제외하고는 평지에 뱀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돼지해”자를 쓰기 이전에 “바다해”자를 쓰게 된 동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해안을 조사하면서 산중턱에서 선사시대 유물과 조개껍질이 발견 된 적이 있다. 이같은 사실은 해안면 분지 전체가 넓은 호수였음을 뒷받침해 준다. 조개껍질을 바다가 먼 동해안으로부터 가져 왔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해안분지가 호수였을 때 민물조개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 때문에 “돼지해(亥)”자를 쓰기 이전에 넓은 호수를 연상하여 “바다해(海)”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해안에는 8봉(여덟봉우리)이 있어서 여덟봉우리중 아무곳에나 올라가 해안을 내려다보면 7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와, 눈 밑으로 한마을 같이 펼쳐진 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그후 해안(海安)으로 불렀다가 해안(亥安)으로 바뀌었다. 885년(고종 32년)에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후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의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정식명칭은 해안분지(亥安盆地)이지만 '펀치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가칠봉·대우산·도솔산·대암산 등 해발 1,100m 이상의 산에 둘러싸인 분지이며, 남북 길이 8.5km·동서 길이 7km에 면적은 44.7㎢로 여의도의 6배가 넘는다. 해발고도는 400 ~ 500m이다. 차별 침식 분지라는 주장도 있고, 운석 충돌 분지라는 주장도 있다.
분지 하나가 1개면을 이루고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분지바닥의 평균고도 400m의 거의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다.
08 ; 05. 1304m봉의 중계탑들이 보이고.
08 ; 05. 바로소 도솔산이 보이고.
08 ; 15. 호국 도솔암입구.
가칠봉가는길 팻말.지정된 길 이외는 가지 말라는 경고판.
08 ; 17. 돌산령 고갯마루.옛 돌산령 버스 정류장.우측은 7726-1 군부대 정문. 갈 수있는 도솔지맥 최북단 마루금이다.
돌산령터널에서 5.8km로 부지런히 걸었어도 1시간 9분 걸렸다.택시로 가면 여기까지 바로 갈 수있다.
도솔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도솔산 출입을 막는 아무런 표지나 방해물이 없어 바로 도솔산으로 올랐다.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에서 본 돌산령북쪽 갈 수 없는 대우산(좌), 가칠봉(우).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에서 . 삼각점은 전적비 좌측에.
무적해병의 신화를 낳은 도솔산지구 전적비와 안내판.
북쪽 가칠봉.대우산.백두대간 무산쪽. 을지전망대. 해안펀치볼. 사명산. 성골지맥.양구읍등주변이 다 조망된다.
위령비쪽으로 돌아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단체사진 찍고 성골지맥을 시작함.
도솔산전투 [兜率山戰鬪]
1951년 6월 4일부터 6월 19일까지 강원 양구군에 있는 도솔산에서 벌어진 전투.
한국 해병대의 승전(勝戰) 전투로서 24개의 목표고지를 점령하여 미국해병 제1사단장으로부터 “한국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이 전략적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하였을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전투이다. 도솔산 지역은 양구와 인제 사이의 태백산맥 중에서 가장 험준한 곳으로, 평균 해발고도가 1,000m 이상이고, 양양~철원을 삼각의 저변으로 하여 원산을 그 정점으로 하는 중동부의 삼각산악지구에서 가장 중심이 되므로 전략상의 가치 역시 컸다. 당시 대치하고 있던 북한군은 막강을 자랑하는 제5군단 예하의 제12사단이었다.
최초의 도솔산 일대에 대한 공격은 미국 해병사단이 담당하였는데, 많은 손실만을 내고 성공하지 못하여 한국군 해병사단에 인계되었다. 6월 4일 아침 8시를 기해 시작된 한국 해병 제1연대의 공격은 9일간의 격전 끝에 캔사스선(Kansas Line:북한군의 공격기도를 분쇄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역을 설정한 주저항선으로서 임진강∼화천호∼양양을 잇는 선) 내의 15개 목표고지를 일단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전진하였다. 공격기간 중 해병대의 손실도 북한군에 못지않게 컸는데, 이는 지형이 험난하여 공격에 난관이 많았고 특히 계속된 강우와 짙은 안개로 항공 및 야포 지원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해병의 끈질긴 전투능력 때문이었다. 이후 제2단계 작전으로 옮아가 6월 19일 도솔산에 대한 마지막 야간공격으로 정상을 정복하였다. 그 후 도솔산전투는 해병대 5대작전의 하나로 꼽히게 되었고, ‘도솔산의 노래’라는 전투 군가(軍歌)를 제작하여 그날의 승리와 기백을 선양하였다.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에서 본 1304m봉으로 이어가는 도솔지맥.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을 내려서며 본 성골지맥.
앞쪽 우측에 보이는 길이 위령비 가는길.
08 : 37/52. 도솔산(兜率山.1147.8m)을 내려서며 본 양구시내와 성골지맥 끝자락.
2009.8.23. 도솔지맥을 끝내며 올린 산행기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북쪽으로 본 갈 수 없는 도솔지맥과 백두 대간모습. 클릭하면 정지화면이 뜹니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본 1304m-대암산분기봉-1218m로 이어지는 도솔지맥모습. 클릭하면 정지화면이 뜹니다.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북으로 본 대우산(1178.5m.좌),가칠봉(1242.2m. 가운데 우측봉),매봉(1290m.),지혜산(1202m),구례산(1352m).
가운데로 이어지는 능선도로가 도솔지맥 마루금인데 모두다 지금은 갈 수 없고
가칠봉은 금강산의 맨 마지막 봉우리로,이름도 이봉우리가 있어야 금강산 일만 이천봉이 완성된다는 뜻에서 더할가 加를 사용했다고한다.
대우산,가칠봉은 피로 얼룩진 대우산,가칠봉전투가 있던곳이다.
가칠봉 전투(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
가칠봉 전투(1951년 9월 4일 ~ 10월 14일)는 1951년 6월 23일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처음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 19 군단장이 양구 북방의 가칠봉 일대에 국군 5 보병사단을 투입하여 고지를 점령하게 한 작전이다. 북조선은 27사단과 12사단을 투입하여 반격에 나섰으나, 40여일의 격전 후에 결국 한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휴전 회담이 시작된 후 유엔군은 미국 1 해병사단과 국군 1 해병연대를 주축으로 강원도 양구군 일대의 펀치볼 전투를 8월 30일에 시작했다. 가칠봉 전투는 펀치볼 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전투로 이 일대를 유엔군과 한국군이 장악하기 위한 전투였다.
가칠봉 전방 500m에는 1,122고지(일명 김일성 고지)가 있었다. 쌍방이 차후 작전을 위해서 필히 확보해야 할 주요 고지였다. 가칠봉은 아군 전선에 너무 근접하여 포병 및 항공 화력이 불가능해서 오로지 보병 근접 전투에 의존해야 했던 전투였다. 이 때문에 미군의 화력과 항공지원에 많이 의존하던 당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인명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형적으로도 가칠봉은 해안분지의 북서쪽 분지를 둘러싸고, 외곽에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는데, 공격자인 한국군은 낮은 지점에서 고지로 올라가며 전투를 치러야했지만, 방어자인 북조선군은 지형을 이용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항공지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올라오는 공격군을 격퇴하는 전투로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향후 작전을 위해서 가칠봉 고지를 장악해야 했던 한국군은 공격을 시작했고, 고지의 주인이 6번이나 바뀌는 혈전을 치뤄여 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국군 5보병사단은 끝까지 가칠봉 일대를 고수함으로써 펀치볼 지역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적전사 1,102명. 포로 250명. 아군전사 692명.실종 437명.
도솔산(兜率山. 1147.8m)에서 동북으로 본 을지전망대와 해안면(펀치볼)모습.
사진 좌측의 가칠봉쪽에서 내려온 안부근처에 제4땅굴이 있고 사진 중앙이 을지전망대다.그뒤로 보이는 큰산은 무산인듯.
을지전망대.
을지전망대는 양구 동북쪽 27㎞,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 남쪽 지점에 해안분지를 이루고 있는 가칠봉(1,049m)의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1987년 12월 12일 전경련회장단이 육군 제1862부대를 방문해 안보교육관의 건립을 제의했고 이듬해인 1988년 5월 31일 1억2,500만원을 부대에 기탁함으로써 을지전망대를 건립하게 되었다.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 비로봉외 4개의 봉우리(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를 볼 수 있는 해발 1,049m의 최전방 안보관광지로 안보교육장으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였던 펀치볼도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전망대가 서 있는 자리 또한 당시에는 치열한 격전지였다.
제4 땅굴
전면적 기습전과 후방공략을 달성하기 위한 북한의 땅굴은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땅굴의 발견경위와 규모는 다음과 같다.
⑴ 제1땅굴:1974년 11월 15일 경기도 연천 고랑포(高浪浦) 북동쪽 8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90cm, 높이 1.2m, 길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다.
⑵ 제2땅굴:1975년 3월 24일 강원도 철원(鐵原) 북쪽 13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1m, 높이 2m, 깊이 지하 50~160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다.
⑶ 제3땅굴:1978년 10월 17일 판문점(板門店) 남쪽 4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95m, 높이 2.1m, 깊이 지하 73m, 길이 약 1.6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다.
⑷ 제4땅굴:1990년 3월 3일 강원 양구(楊口) 북동쪽 26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7m, 높이 1.7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이다.
08 : 56. 내림길에 산양 조형물.
아랫마을 팔랑리에 산양증식복원쎈터가 있고 산양은 양구군 상징 돌물이다.
09 ; 05/7. 약 1051m되는 조망봉에서 뒤 돌아 본 도솔산.
교통호따라 내려감.
09 ; 05/7. 약 1051m되는 조망봉에서 우측으로 본 위령비와 뒤로 대우산(좌),가칠봉(우 뒤)능선
전적비가 있는 도솔산정상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1999.6.20에 양구군에서 저곳에 위령비를 재 건립하고 추모제를 열고있다.
도솔산지구전투 위령비 안내판.
위령비앞의 약사문.
453도로. 도로가 < 으로 꺽이는 지점이다.표고 779m. 이동통신탑. 도로준공비. 임도따라 산불초소(사진 좌중간)쪽으로 오름.
09 ; 46/7. 산불초소.
지나온능선과 도솔지맥.팔랑리. 사명산 갈 지맥이 조망된다.
09 ; 46/7. 산불초소에서 뒤 돌아 본 도솔산.
09 ; 46/7. 산불초소에서 좌측으로 본 대암산(맨 좌측)과 광치령으로 가느 도솔지맥.
09 : 48. 산불초소 바로 아래 임도끝 잣나무밭.텐트가 하나 쳐 있고 사복 여군1명 남자 사병 2명.처음엔 잣나무 관리하는 사림인줄 알았더니
외츨나온 군인인듯한데 상부에 보고를 해야한다하여 평화누리길 간다하고 대표자 이름과 인원만 얘기하고 갔는데...
(나중에 상황을 보니 평화누리길 가는것을 양구군청에 신고하고 가야하는듯).우측에 지뢰팻말걸린 철조망이 이어진다.
09 ; 56. 한오름 올라서 뒤로 도솔산-1304m봉도솔지맥과 내려온 성골지맥을 조망하고 ..
정점은 5분쯤 더 나가 있다.
10 : 15/16. 872.1m.헬기장.글자는알 수 없는 삼각점(인제405란다).도솔산부터 온 지맥과 사명산쪽이 보인다.
뒤에서 좀전에 만났던 여군과 사병들이 부르는듯한 "어르신" "어르신"하고 부르는 소리가 연신 난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뒤에오는 일행들에 우로 꺽어지라 이르고 꽁지가 빠지게 내 달린다.
한참후에 소리가 안들리는 것을 보니 871.2m봉에서 좌측능선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10 : 44. 내려오면서 줄곳 우측 골 물이 앞쪽으로 흘러 잘못왔나 걱정했는데
여기와서 내려온 능선과 도솔산이 뒤로 보이고 우측골 물이 저앞에서 우측으로 빠지는게 보여 안심이 된다.
10 : 49. 전차가 있는곳에서 본 비둑고개 위로 군 교통호들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삼각점도 보인다.
10 : 52.비득고개정상입니다.해발 529m. 우 두타연 8km,좌 월운저수지 4.1km이정표.<평화누리길인듯>.
현지는 비득고개로 적고 있으나 고시된지명은 비둑고개이고 지도엔 비둑고개로 적고 있다.
10 : 52. 비둑고개. 비포장도로.좌측은 쎄멘트 방호벽. 좌우에 군부대 철망 울타리.로프줄 잡고 올라 교통호따라 쭈욱 올라간다.
비득고개정상입니다.해발 529m. 우 두타연 8km,좌 월운저수지 4.1km이정표.<평화누리길인듯>.지도는 비죽고개다.
31번도로가 좌측(남) 저 아래 두밀리서 끝난다.
비둑고개 북쪽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두타연에 이르고
이 방산면,동면 사태리 일대는 6.25때 단장의 능선전투가 있는 격전의 현장이다.
단장의 능선 전투(1951년 9월 13일 ~ 10월 13일).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동면 사태리
단장의 능선 전투(1951년 9월 13일 ~ 10월 13일)는 미국 2사단과 미 2사단에 배속되어 있던 프랑스 대대 및 네덜란드 대대가 중동부 전선의 주저항선을 강화할 목적으로 894고지, 931고지, 851고지에 배치된 북한군 2개 사단(6, 12사단)을 공격하여 점령한 공격 전투다. "단장의 능선"이란 이름은 전투가 끝난 후에 붙여졌다. 미국에서는 지형에 비유하여 펀치보울 전투(Punchbowl battle)라고도 부른다.
적전사 1,473명. 포로 606명
아군전사 597명. 부상 3,064명. 실종 84명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이 전투를 테마로 만든 스타크래프트 맵이 있다.
컨셉 : 한국전쟁 시절 손꼽히는 격전지였던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을 테마로 한 맵으로 전술적 요충지인 능선 확보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맵이다.
교통호따라 조용조용 오르고.
두타연으로 가는 북쪽 계곡길.
현장에서 양구군청에 신청하면 두타연-비둑고게-월운리로 가는 평화누리길을 갈 수있단다.
2구간을 하던 다음날(10.9.한글날)엔 걷기대회가 있는데 양구 축산농가에서 매년 황소 한마리를 추첨해서 상금으로 준단다.
11 ; 08. 중턱의 넓은 벙커봉위 헬기장.
도솔산(좌측뒤)부터 온 성골 지맥 조망. 우측봉이 872.1m.정면 아래가 비둑고개.
여기서부터는 숲속 오솔길 오름길이 된다.
11 : 35/6. 좌측아래로 773.1m 갈림길.
호옆에 글자없는 삼각점. 표고 815m를 가르킨다.선답자들은 흙속에 묻혀있어 못봣을것이다.
11 ; 49/52. 통나무계단을 오른 공사중인 헬기장 .
수리봉정상과 뒤로 도솔산.대우산,가칠봉,비둑고개가 보인다.
좌 대우산,가운데앞쪽이 비둑고개.우측 맨 우측 가운데가 872.1m.
11 ; 49/52. 통나무계단을 오른 공사중인 헬기장 .
우측산은 대우산(1179m),좌측 뒷산은 어은지맥의 백석산(1142m)인듯.
걷어낸 원형철조망을 지나서 본 수리봉정상의 군부대.
12 : 00/03. 저봉이 수리봉갈림봉(957m).
좌측 아래는 뺑 두른 철조망. 옛탄약고인듯.우측은 유해발굴지.우측으로 나가보면 수리봉정상이 건너다 보임.
비둑고개부터 지나온 이 일대가 6.25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피의능선" 인듯.좌측으로 내려감.
피의능선.
피의능선이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으로, 983고지·940고지·773고지 그리고 이와 연결되는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말한다. 피의능선전투는 한국군 제5사단 36연대가 미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1951년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42만여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치른 격전이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 1개 연대 규모의 사상자와 북한군 1개 사단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군 신문 <성조지 Stars and Stripes>가 이 전투를 피의능선전투라 이름 지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한국군이 승리함으로써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북한군 1,480여 명이 사살되고 70여 명이 생포되었다.
12 : 00/03. 수리봉갈림봉(957m)에서 뒤 돌아 본 대우산(우)과 올라온 지맥능선.
전봇대뒤로 멀리 보이는능선은 갈 수 없는 어은지맥인듯
12 : 00/03. 수리봉갈림봉(957m)의 6.25 전사자 유해발굴지.
12 : 00/03. 수리봉갈림봉(957m)에서 건너다 본 수리봉정상모습.
12 ; 36. 걷어낸 원형철조망을 지나고.
통행엔 지장이 없다.
12 : 57. 맥길이 시원찮아 우측 바로 아래의 세멘도로로 내려서 마루금과 나란히 가는 도로따라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부대 철문안길이라 능선으로 지나도 조심조심 지나야 하는데 몰라서 도로로 내려섰다.
13 ; 03. 수리봉진입도로 삼거리.
철문옆에 수리봉 차량운행 안전수칙과 경고판이 있다. 마루금따라 내려오면 철문 좌측으로 내려온다.
좌측으로 도로따라 내려가면 월운리 3`1번도로의 피의능선전투전적비가 되겠다.우측 수렛길로 감.
※수리봉진입도로삼거리-항령-성골령.14km.5시간 20분.
13 ; 03. 수리봉진입도로 삼거리.철문옆에 수리봉 차량운행 안전수칙과 경고판이 있다. 마루금따라 내려오면 철문 좌측으로 내려온다.
좌측으로 도로따라 내려가면 월운리 3`1번도로의 피의능선전투전적비가 되겠다.우측 수렛길로 감.
13 : 33. 우측 구방산로 가는 수렛길을 따라가다 바로 능선으로 붙어 쭈욱 올라간 762m봉.군사훈련용1/2500 모형도.
13 ; 35. 765m. 좌틀하며 저앞쪽에 두밀산과 비슷한높이의 봉 3개가 보인다.
13 ; 54. 봉을 두어개 넘어 임도에 내려서기전봉(약 720m).벙커위에 큰 소나무. 두밀령이 저 건너편에 올려다 보인다.
13 ; 58. 임도. 좌측은 자갈.잠시 임도따르다 좌측 산길로 든다.
14 : 05. 벙커봉을 넘고.
14 ; 12. 제일높은 두밀령(杜密嶺.788.3m).벙커위에 삼각점(글자는 안보이는데 인제301이란다).
좌측은 월운리로 가는 길이고 맥은 우측으로 내려간다
14 : 15/21. 바위그늘에서 잠시 숨돌리며 성골령까지 가기로 합의.
14 : 23/25 조망좋은 헬기장.항령 넘어 UN봉과 사명산. 도솔지맥능선. 성골지매끝을 짐작해봄.
14 ; 34. 우측으로 805m능선분기.좌로 내려감. 좌사면길 있음.
14 : 49. 군사시설물보호구역 말뚝이 나오기 시작함.
15 ; 02. 엄청큰 나무들을 이고 있는 벙커봉을 넘고
15 ; 12. 화생방종과 천막터가 있는 삼면봉에서 우측으로 타이어 계단을 내려가고
15 ; 17. 헬기장. 도고터널위. UN봉의 통신탑이 올려다 보인다.
15 : 19/20. 항령(項嶺). 비포장도로.군 삼각점(333FOB).산나물 불법채취 특별단속 현수막.
15 : 21. 이동통신탑.
15 : 23/27. 헬기장.백호터널위.
15 ; 44. 임도 삼거리.좌 유엔고지.우 733고지 나무팻말. 직등해 오름
15 ; 52. 폐 산불초소.건전지 갈아 끼우고 된비얄을 오름.
16 ; 03/07. 849m봉. 산불초소와 산불감시탑. UN봉 표지.도솔산부터 온길과 갈길,도솔지맥조망
16 : 11. 군도로는 좌측으로 내려가고 앞봉엔 통신탑. .여기서 우측으로 길따라 내려가는게 편하다.
16 : 14. 한국통신 통신탑봉.표고 815m.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길 없다.<좌측 능선주의>
16 : 28. 771m봉. 헬기장. 우측으로 꽃봉(576.6m)능선분기.좌로 내려가며 좌측 사면길 있다.
16 ; 36. 솔숲길을 가며 좌측으로 통신탑봉과 UN봉이 보이고
16 : 42. 안부부터는 통신 삐삐선에 철사줄이 나오는데 통신삐삐선은 성골령끼지 계속된다.
16 : 58/06. 730m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고
17 ; 15/17. 756.5m. 삼각점(양구22. 1986재설).뒤론 유엔봉이 앞쪽으론 사명산과 파로호가 보인다.
좌로 꺽어 암릉 →로프을 내려간다.
17 : 31. 약 660m봉. 봉을 넘어서며 저앞에 뾰족봉이 보이고 갈길은 먼데 어둡기전에 내려가려고 서두른다.
17 ; 39. 오름길에 756.5m.삼각점봉과 UN봉을 뒤돌아보고 급경사 암릉을 오른다.
17 : 52. 약 622m암봉.뒤로 유엔봉부터 지나온 능선과 앞으론 성골령과 갈맥이 내려다 보인다.
17 : 58/00. 절벽바위를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며 해는 꼴깍하는데 아직 봉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18 : 10. 막사터와 쇠기둥이 있는 마지막 573m봉을 넘으니 GPS도 야간 모드로 들어간다.
18 ; 15. 앞의 성골령 절개지는 내려갈수 없다하여 세멘벽돌 경계초소에서 좌측으로 내려감.
우측 넘어로 성골령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18 : 17. 2차선도로.4260S 521전주.도로따라 우측 성골령으로가며 보니 역시 내려올곳이 없다.
18 ; 21. 성골령. 城谷嶺 표석.도로가 <자로 꺽어간다.지나온 능선이 보이고 절개지는 내려 올 수 없다.
18 : 24/35. 날이 어두워졌다.다시 521전주로 가서 후미를 인도한다.7시 20분 차를 탈려면 시간이 없는데
후미는 아직이다. 강회장님은 택시를 호출하고 나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먼저 내려가 여관에 맞긴 짐찾고.
19 ; 10. 후미가 겨우겨우 택시로 터미널에 도착했다(택시 17000원).
19 ; 20. 강형태님. 한상훈님과 나 3명은 동서울행 버스 타고,이선우닌. 최상진님은 7시 40분 춘천행 버스를 탄다.
21 : 08. 동서울도착(12300원).
13 ; 54. 봉을 두어개 넘어 임도에 내려서기전봉(약 720m).
벙커위에 큰 소나무. 두밀령이 저 건너편에 올려다 보인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13 ; 58. 임도. 좌측은 자갈.잠시 임도따르다 좌측 산길로 든다.
14 ; 12. 제일높은 두밀령(杜密嶺.788.3m).벙커위에 삼각점(글자는 안보이는데 인제301이란다).
좌측은 월운리로 가는 길이고 맥은 우측으로 내려간다
두밀령(杜密嶺.788.3m)을 뒤돌아 보며 잠시쉬고.
14 : 23/25 조망좋은 헬기장에서 본 UN봉(제일높은봉).앞 안부가 항령.
14 : 23/25 조망좋은 헬기장에서 본 사명산.
15 ; 02. 엄청큰 나무들을 이고 있는 벙커봉을 넘고
15 : 19/20. 항령(項嶺).
비포장도로.군 삼각점(333FOB).산나물 불법채취 특별단속 현수막.
15 : 21.터널위 이동통신탑과 뒤로 UN봉.
15 ; 44. 임도 삼거리.
좌 유엔고지.우 733고지 나무팻말. 직등해 오름
15 ; 52. 폐 산불초소.건전지 갈아 끼우고 된비얄을 오름.
16 ; 03/07. 849m봉. 산불초소와 산불감시탑. UN봉 표지.
도솔산부터 온길과 갈길,도솔지맥조망
16 ; 03/07. 849m UN봉에서 뒤 돌아 본 항령(우아래)-두밀령(좌상)
뒤로 멀리 보이느 산줄기는 대암산-광치령으로 이어가는 도솔지맥.
16 ; 03/07. 849m UN봉에서 뒤 돌아 본 두밀령(우)-수리봉(좌)-비둑재(중)-도솔산(우).
16 ; 03/07. 849m UN봉에서 본 갈 지맥능선.
앞쪽에 통신탑이 보이고 좌측산이 756m,우측뒷쪽이 성골령.
16 ; 03/07. 849m UN봉에서 본 좌측 모습.
16 : 11. 군도로는 좌측으로 내려가고 앞봉엔 통신탑.
여기서 우측으로 길따라 내려가는게 편하다.
16 ; 36. 꽃봉갈림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가 솔숲길을 가며 좌측으로 통신탑봉과 UN봉이 보이고
17 ; 15/17. 756.5m. 삼각점(양구22. 1986재설).뒤론 유엔봉이 앞쪽으론 사명산과 파로호가 보인다.
좌로 꺽어 암릉 →로프을 내려간다.
17 ; 15/17. 756.5m. 삼각점(양구22. 1986재설)에서 뒤 돌아 본 유엔봉(우).
17 ; 39. 오름길에 뒤 돌아 본 756.5m.삼각점봉.
17 : 52. 약 622m암봉에서 뒤돌아 본 유엔봉(가운데 맨뒤).
17 : 52. 약 622m암봉에서 본 본 성골령(좌)과 다음구간의 674.6m봉과 갈 지맥능선.
17 : 58/00. 절벽바위를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며 해는 꼴깍하는데 아직 뾰족봉 하나를 더 넘어야 한다.
18 : 10. 막사터와 쇠기둥이 있는 마지막 573m봉을 넘으니 GPS도 야간 모드로 들어간다.
18 ; 15. 앞의 성골령 절개지는 내려갈수 없다하여 세멘벽돌 경계초소에서 좌측으로 내려감.
우측 넘어로 성골령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우측 넘어로 성골령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18 : 17. 2차선도로.4260S 521전주.
도로따라 우측 성골령으로가며 보니 역시 내려올곳이 없다.
18 ; 21. 성골령. 城谷嶺 표석.도로가 <자로 꺽어간다.
지나온 능선이 보이고 절개지는 내려 올 수 없다.
18 : 24/35. 날이 어두워졌다.다시 521전주로 가서 후미를 인도한다.7시 20분 차를 탈려면 시간이 없는데
후미는 아직이다. 강회장님은 택시를 호출하고 나는 지나가는 양구 산림기술 사무소 대표님의 차를 얻어타고
먼저 내려가 여관에 맞긴 짐찾고 이어 후미를 태운 택시가 도착해 겨우겨우 7시 20분동서울행 막차를 탔다.
차태워 주신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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