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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ㅎ 기맥,지맥.

호미지맥 6구간[흰날재(31번도로)-금오산-공개산-호미곶](終).

호미지맥 6구간[흰날재(31번도로)-금오산-공개산-호미곶](終).

금오산(金聱(듣지 아니할 오)山. 230.4m)정상에서 본 조항산과 호미지맥모습.

◈ 산행코소와 거리 및 소요시간. 도상거리 18.3km . 5시간 15분.

흰날재(희날재.31번도로)-(3.1)-금오산-(4.2)-공개산-(4.8)-우물재산-(4.4)-고금산-(1.8)-호미곶.

◈ 일시 : 2009. 3. 15(일).

◈ 인원 : 요맥회원 9명(요맥 강형태 대장님. 양천 심용보님. 대맥 최평칠님.김한수님.권순창 교수님.산바람 최덕조님.홍완섭님 .현주환님. 그리고 나)

◈ 날씨 : 완연한 봄날씨로 화창하고 시계도 좋아 산행하기는 아주좋음.

◈ 지도 :영진5만 : P393 포항.P.366포항.P366.경주,포항.

호미지맥6구간(흰날재-금오산-공개산-호미곶))지도 . 누르면 확대됩니다.

◈ 일정정리.(11 : 00~16 : 15. 5시간 15분).

06 : 30. 사당동출발.
07 : 20. 천안통과.
10 : 40/45. 흰날재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찍고 차량으로 동산공원묘역으로 오름.


11 : 00. 동산공원묘역끝 금오산초입에서 산행시작.
11 : 07/12. 금오산(金聱(듣지 아나할 오)山. 230.4m. △ 불국사 425).산불초소와 삼각점과 금오산 표찰있음.조망좋음.
11 : 19. 임도에 내려서 임도따라감.
11 :40. 첫 임도삼거리.면경계능선.좌측 호미곶13.8km으로 감.우측은 닭벼슬산(148m),광정산(198m)가는 줄기임.동산공원2.7km.


11 : 46. 진불사 임도삼거리.좌측(동해 흥환리 1.5km)내림길은 진불사 길.우측능선길이 호미곶(13.4km)가는길임.
12 : 02. 임도에서 좌측 212m봉으로 오름.
12 : 10.212m봉.정상은 조망없고 오름길 중간바위가 조망처임.
12 : 16. 212m봉 건너편봉에서 직진않고 우측으로 내려감.
12 : 21. 윷판재.성황당흔적있고 212봉을 우측으로 돌아온임도만남.
12 : 28/45. 임도에서 공개산 오름길 초입의묘지있는 소나무쉼터에서 점심.


12 : 55. 공개산(孔開山.214.6m).주능선에서 좌측으로 150여 m 떨어져 갈림점보다 낮게있음.
13 : 13. 임도삼거리.좌측아랫길 호미곶 9.8km로 감.우측 능선길은구룡포 말봉재 3.2km.뒷쪽은 포항시내 6.2km.
13 : 34. 임도 삼거리.호미곶 8.1km우측은 구룡포 삼정 1km. 뒷쪽 포항시 7.9km.
13 :51. 명월산(189m).산불초소와 명월산표찰.


14 : 23/38. 임도 사거리.좌측은 동해 발산리 2.3km.우측 대보.절골1.9km.호미곶 5.4km로 직진함.우물재산 찾느라 15분소모.
14 : 47. 임도 갈림길.세멘트길은 직진해내려가고 좌측 수렛길로 듬.
14 : 51. 우물재산(180.6m).삼각점과 준희님 표찰.지도상의 우물재산(180.1m)과는 다른곳임.
15 : 37. 고금산(122m) 군부대 경고판에서 우측계곡으로 우회함.


15 : 48. 세멘트도로 만나고 호미곶이 앞에보임.도로따라 내려옴.
16 : 04. 929번 도로를 만나고 호미곶 표석과 등대박물관 안내판있음.
16 : 15. 호미곶광장.


16 : 15/55.호미곶과 등대박물관 들러봄.
18 : 30. 포항시내로 들어오다 저녁먹고 포항에서 투숙.

◈ 산행후기.

오늘은 평소보다 15~20분은 빠르게 차가 내려와 중간에 한번쉬고 흰날재에 도착하니 10시 40분.바람이 솔솔불어 찬기운이 돈다.

10 :40/45.31번도로의 흰날재.
흰날재는 희날재,히나리재등로로 불리기도 하는데 포항에서 구룡포로 넘어가는 작은고개로 4차선의 31번국도가 지난다.
지도엔 바로 북쪽을 백일령(白日嶺)오로 표기하고 있는데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는곳이다.

흰날재.
신라 어느 왕이 이곳을 돌아보다가 봉상현(장기현의 옛 이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태양이 빛을 잃고 밤과 같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놀란 왕이 일관(日官)을 불러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일관이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몸으로 경솔하게 나다니면서 오랫동안 궁을 비워 두었기 때문에
하늘이 크게 노하여 빛을 거두어 간 거라고 했다. 왕은 크게 뉘우치고 환궁을 서둘게 되었다.
어둠 속으로 막 고개를 넘자 태양이 다시 빛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밝은 날이 되었다는 뜻의 흰날재, 희날재, 히나리재 등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외적의 침입을 받아 피를 많이 흘렸다는 또 다른 전설에 따라 피날재로 불리기도 한다.
히날재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는 흔히 백토(白土) 라고 불리는 벤토나이트(Bentonic)가 무진장 매장되어 있어 몇몇 광산업체가 채광작업을 하고 있다.


간단하게 졸업사진 한 장 찍는다.심용보님 4000산을 오른지가 좀 지났지만 4000산 등정기념사진도 아울러 남기며 축하를 드린다.
동산공원까진 마루금따라 세멘트도로가 나있어 차로 오르는데 별 이의들이 없다.

10 :40/45.31번도로의 흰날재.
신라 어느 왕이 이곳을 돌아보다가 봉상현(장기현의 옛 이름)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태양이 빛을 잃고 밤과 같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놀란 왕이 일관(日官)을 불러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일관이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몸으로 경솔하게 나다니면서 오랫동안 궁을 비워 두었기 때문에
하늘이 크게 노하여 빛을 거두어 간 거라고 했다. 왕은 크게 뉘우치고 환궁을 서둘게 되었다.
어둠 속으로 막 고개를 넘자 태양이 다시 빛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밝은 날이 되었다는 뜻의 흰날재, 희날재, 히나리재 등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좌로부터 강형태 요맥회 회장님.양천 심용보님.권순창 교수님.김한수님.나. 현주환님.최평칠님.홍완섭님.최덕조님.



11 :00. 동산공원묘역.
차로 오르면서 보니 이쪽 저쪽으로 가족묘지가는 샛길들이있고 금오산밑 공원묘지끝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동산공원묘역에서 본 금오산.

동산공원묘역끝에서 산행시작 11 :00.
흰날재에서 여기까지 걸어올려면 40여분은 족히 걸릴듯싶으나 지맥능선위로 난 차길따라 차로왔다.

11 :07/12.금오산(金聱山.230.4m).
차도는 금오산을 우측에 끼고 휘돌아가고 넓은길따라 7분쯤 오르면 금오산 정상인데 감시원이 있는 산불초소가 있고
산불초소에 준희님의 금오산(230.4m)표찰이 걸려있고 산불초소밑에 삼각점(불국사 425)이 있다.

금오산(金聱山.230.4m)의 오자를 자라오 鰲로 표기하는사람도 있으나 지리원 지도는 듣지아니할 오 聱로 표기하고 있다.

금오산(金聱山.230.4m)에선 사방팔방 막힘이없이 조망이 펼쳐져 뒤로는 멀리 토함산부터 가까이는 조항산의 중계탑과 동산공원묘역,
포항시와 연일만,구룡포와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금오산내림길엔 노랗게핀 복수초 군락지가 있고 몇분 내려오면 금오산을 좌측으로 돌아온 임도와 다시 만난다.

11 :07/12.금오산(金聱山.230.4m).
산불초소밑에 삼각점이 있다.

금오산(金聱山.230.4m)에서 양천 심용보님.
고희를 지난 연세에4000산을 오르시고 산행횟수가 1900회를 기록하셨다.
1년이 52주 일주일에 두 번씩 산에 간다해도 1년에 100회다.
산행횟수가 1900회면 어느정도 다녀야할지 계산이 안되는 숫자다.

금오산(金聱山.230.4m)에서 땡겨 본 조항산(246m)중계탑.
사진중앙의 연기나는 왼쪽이 흰날재이고 사진 우측의솔밭 욱어진 두 번재봉이 지도상의 조항산(212m)이다.

금오산(金聱山.230.4m)에서 본 동산공원묘역과 포항시.

금오산(金聱山.230.4m)에서 땡겨 본 가야할 지맥모습.
사진 우측이 임도가 212봉을 돌아가는 모습이고
사진 중앙 뒷족에 밋밋한곳이 공개산이다.

금오산(金聱山.230.4m)에서 땡겨 본 구룡포의 동해바다.

금오산(金聱山.230.4m)에서 내려오다 본 마루금따라 이어지는 임도.
이 임도 (임도라기보다는 군사도로다)는 우물재산 바로전까지 이어져 오늘구간의 2/3이상을 임도를 따라간다.


11 :40. 첫 임도삼거리.면경계능선.닭벼슬산 갈림길.좌측 호미곶13.8km.
임도가 마루금인 도로를따라 한굽이 돌아가면 좌측으로 212m봉으로가는 능선이 갈라지는 봉이있고
임도는 그 우측밑으로 좀 떨어져서 건너편 능선위로 건너가면 첫 번째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능선은 닭벼슬산(148m),광정산(198m)으로 가는능선이고 이정표는 호미곶 13.8km,동산공원 2.7km를 가르키고있다.

11 :40. 첫 임도삼거리.
면경계능선을 만나는곳이고 우측능선은 닭벼슬산 광정산(198m)으로 가는능선이고
이정표는 호미곶 13.8km,동산공원 2.7km를 포항시내 2.2km를 가르키고 있다.
앞으로 만나는 갈림길에서 갈길은계속 호미곶.방향이다.



11 :46.임도 삼거리.흥환리,진불암 갈림길.
우측으로 뾰족한 200m봉을 보며 한모퉁이를 돌아 내려서면 두 번째 삼거리가 나오는데 기둥에 진불암을 표시하고있고
좌측능선에 동해흥환1.5km,호미곶 13.4km를 표시하고 있는데 동해면 흥환리를 말한다.당연히 우측 호미곶 방향으로 간다.
맨뒤 꽁무늬로 쫓아왔는데 어째 선두가 후미되어 뒤에서 오고 있다.좀전에 212봉갈림봉에 올랐다 오는 모양이다.

우측으로 뾰족한 200m봉을 돌아가고 있다.
저앞에 보이는봉이 공개산인줄알고 올랐던 212m봉이다.

저앞에 둥근봉이 212m봉이고 그뒤 맨 좌측이 공개산이다.
앞도로 왼쪽에 흥환리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11 :46.임도 삼거리.진불암 갈림길.
좌측 동해흥환은 동해면 흥환리를 말한다.앞에보이는 둥근봉은 또다른 212m봉이고 그뒤로 배가 보인다.

또다른 212m봉과 동해면 흥환리.

12 : 10.212m봉.
15분쯤 임도를 따라가다 좌측에 좀 높은봉이 있어 이봉이 공개산인가싶어 올라가 삼각점을 찾아보나 삼각점도 없고 조망도없다.
공개산이 아니고 212m봉이다.오름길의 바위에서 뒤로 금오산과 구룡포를 돌아본 것을 소득이라고 생각하고
거친 잡목을 헤치고 건너편 봉우리에올라서면 직진길이 더 좋고우측으로급하게 떨어지는 지맥길은 족적이 없다.

여기서좌측 212m봉을 오른다.12 :01.

212m봉을 오르다 우측으로 본 눌태지와 구룡포.

212m봉을 오르다 뒤 돌아 본 금오산(가운데 맨뒤 제일 높은봉)과 200m봉(좌측 뾰족봉)
200m봉 우측에 하얀 임도가 진불암 갈림길 삼거리고 200봉넘어가 닭벼슬산갈림길 삼거리다.
보이는 좌측임도는 지맥길이고 우측임도는 진불암쪽 임도다.

12 : 21. 윷판재.
내려오면 성황당터같은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인데우측 후동리에서 좌측 흥환리로 넘어가는 수렛길이 있는 윷판재다.
몇m앞에 212봉을 우측으로 돌아온 임도가 있고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좌측에 묘지가 있고 소나무 그늘이있는 공개산입구가 나온다.

12 : 21. 윷판재.
우측 후동리에서 좌측 흥환리로 넘어가는 수렛길이 있고
우측 몇m앞에 212봉을 우측으로 돌아온 임도를 다시 만난다.

임도에서 본 212m봉(좌).

12 : 28/45. 임도에서 공개산 오름길 초입에서 점심.
모처럼만에 선두후미없이 모두모여 점심을 먹으며 공개산을 방금전에 지난건지 아니면 앞봉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12 : 28/45. 묘지와 소나무그늘이 있는 공개산 오름길 초입에서 점심.

12 : 55. 공개산(孔開山.214.6m).
앞에봉이 공개산이라 결론짓고한턱 올라서면 공개산 갈림길인데 공개산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50~200여m떨어져있고
높이가 갈림봉보다 낮고 밋밋해서 자칫하면 지나치기 쉽겠다.준희님의 표찰이 걸려있고 20여 m더 나가면 글자판없는 삼각점이 있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건너편봉에서 우측으로 급경사를 내려오는데 앞서간 선두가 올라오고 있다.공개산을 찍지 않고가다 다시찍으러 간단다.
내려가면 우측으로돌아온 임도를 다시 만나고 바로앞에 삼거리가 있다.

12 : 55. 공개산(孔開山.214.6m).
공개산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50~200여m떨어져있고
높이가 갈림봉보다 낮고 밋밋해서 자칫하면 지나치기 쉽겠다.


12 : 55. 공개산(孔開山.214.6m).
준희님의 표찰이 걸려있고 20여 m더 나가면 글자판없는 삼각점이 있다.

12 : 55. 공개산(孔開山.214.6m)본 212m봉(가운데)와 금오산(212봉 우측뒷봉),200m봉(212봉 좌측).

13 : 13. 임도삼거리.구룡포 말봉재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위로 가는임도는 구룡포 말봉재로 가는길이고 좌측 능선아래로 있는 임도가 호미곶으로 가는 임도인데
지맥 마루금은 구룡포로가는 임도로 가다 좌측으로 내려가야하는데 경사도 지고 길도 없으니 아예 호미곶가는 임도를 따르는게 수월하다.
이정표는 호미곶 9.8km,구룡포 말봉재 3.2km,포항시내 6.2km라 써 있다.

위에서 본.구룡포 말봉재 갈림길.
지맥마루금은 앞봉에 올라 좌측으로 내려서야하나 길이 제대로 없고
자칫 우측 말봉재 임도를 따를수가 있으니 아예 아래 임도를 따라가는 것이 편하고 쉽다.

13 : 13. 임도삼거리.구룡포 말봉재 갈림길.
좌측 임도를 따라 산 허리를 돌아가는 것이 편하다.호미곶 9.8km,구룡포 말봉대 3.2m,포항시내 6.2km.

산 허릿길 임도를 따라가며 뒤 돌아 본 공개산(사진 중앙의 둔덕봉).

13 : 34. 임도 삼거리.구룡포 삼정갈림길.
공개산을 뒤돌아보며 임도따라 20여분을 가면 차단기가있는 임도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측은 구룡포 삼정으로 가는길이다.
좌측 흥환리가는 수렛길이 있을듯하나 보이지 않고 임도따라 다시 15분쯤가면 저앞에 산불초소가있는 명월산이 나온다.

13 : 34. 임도 삼거리.구룡포 삼정갈림길.
좌측 호미곶 8.1km, 우측은 구룡포 삼정 1km. 뒷쪽 포항시 7.9km.

13 :51. 명월산(189m).
임도에서 좀 떨어져있는 산불초소에 오르면 감시원이 있고 준희님의 명월산 189m표찰이 산불초소에 매여있고
명월산 산불초소에서 보는 조망 또한 일품이다.뒤론 금오산이 좌우론 포항시내와 동해바다가 까깝게 보인다.

13 :51. 명월산(189m).
삼각점은 없고 유인 산불초소가 있다.우측아래에 명월마을이 있다.

13 :51. 명월산(189m)에서 뒤 돌아 본 지맥모습.
가운데 전깃줄뒤로 공개산이 보이고 좌측 응암산(158.5m)앞에 채석장이 보인다.
좌측으로 보이는임도는 삼정가는 임도같다.우측임도가 지맥능선이다.

13 :51. 명월산(189m)에서 본 포항시내.

13 :51. 명월산(189m)에서 본 가야할 지맥능선.
가운데 조금 움푹한곳 좌측이 180.6m 우물재산이고 우측큰 나무사이로 통신탑이 보인다.

다시 올라온길로 내려와 다시 임도를 따라 몇구비를 돌아가서 지도상의 180.1m 우물재산을 찾아보나 보이질 않는다.
임도사거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찾아봐도 삼각점이나 우물재산이라 생각될 만한 흔적이없어 다시 내려간다.

14 : 23/38. 임도 사거리. 동해 발산리 우측 대보.절골 갈림길.
임도사거리엔 이정표가있는데 우측은 대보면 절골로 1.9km,좌측은 동해면 발산리로2.3km,직진 호미곶이 5.4km,뒷쪽은 포항시내로 10.6km란다.
앞쪽 우측에 군 통신탑같은것이 보이고 학생들 한팀이 해봉사가는길을 묻고 있다.

14 : 23/38. 임도 사거리.
우측은 대보면 절골로 1.9km,좌측은 동해면 발산리로2.3km,직진 호미곶이 5.4km,뒷쪽은 포항시내로 10.6km.
지도상의 180.1m 우물재산은 잡목뿐인 능선에 불과하다.

14 : 47. 임도와 헤어짐.
임도사거리를 지나 좀더 나가면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졌다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고
지맥은 좌측 수렛길을 따라 들어선다.

14 : 47. 임도와 헤어짐.
흰날재부터 계속돼온 임도는 여기서 직진해 내려가고
지맥은 좌측 수렛길을 따라 들어가다 수렛길을 버리고 산길로 오르면 우물재산이다.
바로 전에 우측으로 갈라진능선에 명월산에서 보던 군부대 통신탑이 있는 봉이다.

14 : 51. 우물재산(180.6m).
수렛길을 따라 조금 들아가면 수렛길은 좌측으로 돌아가고 지맥은 직진해 잠깐 올라서면 대보 301 삼각점과 우물재산 180.6m표찰이 걸려있다.
오면서 우물재산을 찾다 못찾아 포기했는데 여기와 있다. 지도상의 우물재산과는 위치와 높이가 틀린다.

14 : 51. 우물재산(180.6m).
대보 301 삼각점과 준희님의 우물재산 180.6m표찰이 걸려있다.
지도상의 우물재산(180.1m)과는 위치와 높이가 틀린다.


우물재산을 뒤로하고 빼곡한 소나무숲을 빠져나오면 다시 수렛길을 만나서 수렛길을 따라서 좀 가다가는 어느사이에 오솔길로 변해있다.

이런 수렛길을 따라서 좀 가다가 오솔길이 고금산까지 이어진다.

15 : 37. 고금산(122m) 군부대 경고판에서 우측계곡으로 우회함.
큰 묘지를 지나면서 좌측계곡으로 하산길이있고힘들게 올라선 능선위 사거리엔 녹슨 안테나가 있는데 직진하여 넘어간다.(15 :34)
지뢰지역 경고판이있는 고금산은 우측으로 우회하여 계곡을 건너가면 곡장을 두른 묘지들이 있고 수렛길이 이어진다.

15 : 37.고금산(122m) 군부대 경고판.
고금산(122m)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우측 계곡으로 우회하여 가는데 이런 경고판이 수시로 나오고

몇분후 계곡을 건너 소나무숲길을 빠져 나가면 세멘트 도로가 나오고 호미곶이 앞에 보인다.


15 : 48. 세멘트도로 만나고 호미곶이 앞에보임.도로따라 내려옴.
수렛길은 세멘트포장길이 되고 호미곶의 풍차와 등대를 보면서 세멘트 도로를따라 좌측으로 나와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간다.

15 : 48. 세멘트도로를 만나서 본 호미곶전경.

호미곶으로 나가면서 뒤 돌아 본 고금산.
집 좌측의 골짜기로 나왔다.

호미곶 북쪽의 대보항.
지맥이 가장 긴쪽으로 가자면 우물재산에서 봉화산(135.1m)을 거쳐 이쪽으로 가야하겠지만
가장 동쪽으로 가자니 고금산을 거쳐 호미곶광장쪽으로 이어가야할것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금년농사를 준비하느라고 밭갈이를 하고 있다.

호미지맥의 종착지가 호미곶이 가까워지고 있다.

929번 도로의 대보2리 호미곶(虎尾串)표석.


16 : 15. 호미곶광장.
929번 도로를 건너호미곶 표석과 등대박물관 안내판을 끼고 호미곶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조금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이어 호미곶이다.

좌측에 등대박물관이 있고 우측광장에 상생의 손과 연오랑 세오녀상이 있다.

16 : 15. 호미곶광장.
포항시에서 새천년의 출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성, 새천년의 미래지향과 상징성을 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124억원을 들여 조성하였다.
13,920평의 부지에 상생의 손,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 연오랑 세오녀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상생의 손은 육지에 왼손이, 바다에 오른손이 설치되어 있는데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조성되었다.
육지에 있는 왼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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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손과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
육지에 있는 왼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천년의 눈동자는 햇빛채화기로 햇빛의 적외선을 열로 변환시킨다.
천년의 눈동자 안의 불씨함에는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20세기의 마지막 불씨',
남태평양 피지에서 채화한 '지구의 불씨', 독도에서 채화한 '즈믄해의 불씨',
호미곶에서 채화한 '새천년 시작의 불씨'를 합한 '영원의 불씨'가 보관되어 있다.

바다에 있는 상생의 손 오른손.

연오랑세오녀상 (延烏郞細烏女像).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던 부부인데,
157년(신라 아달라왕 4) 미역을 따러 나간 연오랑이 올라섰던 바위(물고기라고도 한다)가 움직여 일본의 한 섬에 닿아 임금이 되었다
.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도 또한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그 때 신라에서는 돌연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변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해와 달의 정(精)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고 아뢰었다.
왕이 급히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세오녀가 짠 세초(細綃: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를 가지고 돌아가 하늘에 제사지내라 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다시 해와 달이 밝아졌다. 이로부터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지금의 영일만)이라 하였다.

전국최대의 가마솥.
떡국 2만명분(4톤)을 끓일 수 있단다.

호미지맥종주와 아울러 양천 심용보님 4000산 등정 기념사진.
좌로부터 요맥회 회장 강형태님.김한수님.홍완섭님.양천 심용보님.현주환님.권순창님.최덕조님.나. 최평칠님.

국립 등대박물관.

호미곶의 끝자락에서 본 동해바다(요맥님 사진).

호미곶해맞이광장

200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매년 열리는 장소이다.
포항시에서 새천년의 출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성, 새천년의 미래지향과 상징성을 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124억원을 들여 조성하였다.
2000년 새천년 한민족해맞이 축전, 2002년 전국 최대 규모의 축구공 제작, 2004년 1만명 떡국 만들기 체험행사,
2006년 독일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초대형 태극기 제작 등 다양한 해맞이 이벤트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13,920평의 부지에 상생의 손,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 연오랑 세오녀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상생의 손은 육지에 왼손이, 바다에 오른손이 설치되어 있는데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조성되었다.
육지에 있는 왼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천년의 눈동자는 햇빛채화기로 햇빛의 적외선을 열로 변환시킨다.
천년의 눈동자 안의 불씨함에는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20세기의 마지막 불씨', 남태평양 피지에서 채화한 '지구의 불씨',
독도에서 채화한 '즈믄해의 불씨', 호미곶에서 채화한 '새천년 시작의 불씨'를 합한 '영원의 불씨'가 보관되어 있다.
연오랑 세오녀상은 이야기의 배경인 영일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연오랑이 타고간 바위가 이곳에서 솟아올랐다고 전해진다.

광장 진입로에는 유채꽃 단지가 있고 매년 4~5월경에 유채꽃이 활짝 핀다.
이밖에도 광장 주변에 한국 최초의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의 세찬 해풍을 이용하는 풍력발전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연오랑세오녀설화 [延烏郞細烏女說話]

고려 초엽 박인량(朴寅亮)이 엮은 《수이전(殊異傳)》에 실렸던 것으로, 지금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수록되어 전한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던 부부인데,
157년(신라 아달라왕 4) 미역을 따러 나간 연오랑이 올라섰던 바위(물고기라고도 한다)가 움직여 일본의 한 섬에 닿아 임금이 되었다.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도 또한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그 때 신라에서는 돌연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변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해와 달의 정(精)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고 아뢰었다.
왕이 급히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세오녀가 짠 세초(細綃: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를 가지고 돌아가 하늘에 제사지내라 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다시 해와 달이 밝아졌다. 이로부터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지금의 영일만)이라 하였다.
이는 한국의 태양신(太陽神)에 관한 신화로서는 유일한 것이며,
이 태양신의 일본 이동과 관련하여 일본 태양신 신화와의 비교연구가 주목된다.

◈ 돌아오는길.

호미곶광장을 둘러보고 졸업사진찍고 등대박물관 대충 훝어보고 나와도 금방 한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올라갈 시간이 급해서 졸업 뒤풀이도 제대로 못하고 지난번에 들렸던 오천근처의 중국집식당에서
권순창님이 준비한 과메기와 중식으로 저녁을 먹고 일행들은 서울로 올라가고 나는 지난번에 비가와서 못한
보현,팔공지맥을 입문할려고 포항시내 죽도시장근처에서 묵으며 다음날 산행채비를 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