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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산행/일반산행

세석산장-삼신봉-내삼신봉(1354.7m)-상불재-쌍계사.

세석산장-삼신봉-내삼신봉(1354.7m)-상불재-쌍계사.

대성골 갈림길 근처의전망대 암봉위에서 본 낙남정맥의 삼신봉능선.


◈ 산행코소와 거리 및 소요시간. 도상거리 16.5km 약 10시간 25분(쉬엄쉬엄).

세석대피소-음양수샘-대성골 삼거리-석문-1270m-한벗샘-1214m-삼신봉(1284m)-내삼신봉(1354.7m)-송정굴-쇠통바위-1301m-
하동 독바위-다시 1301m봉-상불재-불일폭포-불일평전-쌍계사.

◈ 일시 : 2009. 10. 22(목).

◈ 날씨 :전형적인 가을날씨로 산행하기엔 최적의 날씨이나 시계는 썩 좋지는 않음.

◈ 인원 : 집사람과 둘이서.

◈ 지도 :월간산지도 1/65000.

세석산장-삼신봉-내삼신봉(1354.7m)-상불재-쌍계사.지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 일정정리.

06 :00. 세석산장출발.
06 : 44. 일출.
06 : 54. 전망대에서 지리주능선조망.
07 : 00. 대성골갈림 삼거리.(삼신봉 5.3km,의신 6.9km,세석 2.2km).
07 : 18. 석문.(쌍계사 13.8km,세석 2.7km).
08 : 06. 암봉을 우측으로 크게 우회함.
08 : 25. 산죽밭속 작은 헬기장 비상용 이동전화중계기.(세석 4.4km,청학동 5.6km,쌍계사 12.1km).
08 : 33. 우측능선으로 단천골 하산길.
08 : 35. 한벗샘 비상용 이동전화중계기.
09 : 19. 전망바위.삼선봉,왕시루봉등 주변조망.
09 : 54. 전망바위.내삼신봉과 지리 주능선조망.
10 : 09/40. 삼신봉(1288m).정상표석과 제단.조망 안내판.(세석 7.5km,청학동 2.5km,쌍계사 8.9km).
11 : 12/20. 내삼신봉(1354.7m).정상표석과 2등 삼각점(운봉 27).암봉임.
11 : 36. 우측 로프 넘어로 송정굴.
12 :05. 쇠통바위.거대한 바위군으로 왼쪽 하늘구멍위로 올라감.(상불재 2.5km,세석 10km,쌍계사 6.5km,삼신봉 2.5km)
12 : 42. 1301m 독바위 갈림봉.왼쪽 청학동 하산길로 내려감.(세석 10.7km,삼신봉 3.2km,쌍계사 5.7km)
12 : 48/13 :01.하동 독바위 전망대.
13 : 06. 다시 올라온 1301m 갈림봉.
13 : 25. 시루봉,회남재로 가는 주능선 갈림길.주능선은 막혀있음.우측지능선으로 내려감.
13 : 33. 상불재 삼거리.좌측은 청학동길. 직진함.(쌍계사 4.9km,삼성궁 2.3km, 삼신봉 4.1km).
14 : 05. 너덜길 내려옴 (삼신봉 4.8km,쌍계사 4.1km).
14 : 54. 불일폭포 입구.(불일폭포 0.3km,삼신봉 6.9km,쌍계사 2.1km).
15 : 04. 불일폭포.
15 : 14/24. 불일암.
15 : 30. 다시 불일폭포입구.바로 아래가 불일평전임.
16 : 10. 쌍계사.
16 : 25. 주차장.
17 : 40. 저녁먹고 구례행 버스탐(2050원).
18 : 40. 구례에서 구례구역가는 버스탐(1000원)
19 : 11. 구례구역에서 용산행 새마을호 탐(천안 25200원).
22 : 40. 천안도착.

◈ 산행후기.

06 :00. 세석산장출발.
아직 날이 밝질않아 취수장에서 물받고 10여분 꾸물거리니 날이 훤해진다.

06 : 44. 일출.

06 : 54. 전망대 암봉위에서 뒤 돌아 본 영신봉(좌),세석산장(가운데 하얀점),촛대봉(우).

06 : 54. 전망대 암봉위에서 본 가야할 남부능선 낙남정맥길.
능선끝 한일자를 그은 삼신봉능선의 가운데 뾰족한 얕은봉이 삼신봉.좌측봉이 외삼신봉,우측 제일 높은봉이 내 삼신봉.

06 :58. 곧 무너져 내릴듯한 전망대 암봉.
어떻게보면 못생긴 사람 얼굴같기도하고...

07 : 18. 석문 혹은 통천문이라고도 하는데 거대한 바위사이에 큰 바위가 끼여있다.
바로앞에 이정표(쌍계사 13.8km,세석 2.7km)가 있다.

07 :20.석문을 지난 건너편봉에서 다시 본 남부능선.

08 : 20. 큰 암봉군을 우측밑으로 우회하여 건너간 높은봉에서 뒤 돌아 본 촛대봉과 천왕봉.

08 : 35. 한벗샘 이동전화중계기.
좌측 거림쪽으로 5분쯤 산죽밭을 헤치고 내려가면 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말랏는지 이정표의 한벗샘 표지판도 떼어냈다.
누눈가 친절하게 비상용 이동중계기에 한벗샘 ↓ 표시를해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작은 그림은 넓게 본 모습.

09 :08. 이런 산죽밭이 종종 나온다.

09 : 19. 우측 전망좋은 바위에서 본 왕시리봉-노고단-반야봉(맨뒷줄).
가운데줄은 좌측이 황장산-당재-불무장등.맨앞 골짜기는 단천골.

09 : 19. 우측 전망좋은 바위에서 땡겨본 단천골의 단풍.

09 : 54. 삼신봉 앞 전망바위에서 뒤 돌아 본 세석으로 이어가는 낙남정맥과 지리 주능선.
가운데 맨뒤가 영신봉,그 우측 칼날봉이 촛대봉,그 우측뒤가 연하봉.
좌측 나뭇가지뒤로 벽소령산장이 하얀 점으로 보인다.

09 : 54. 삼신봉 앞 전망바위에서 본 내 삼신봉.
정상표석이 사람같이 보인다.

09 : 54. 삼신봉 앞 전망바위에서 땡겨 본 촛대봉에서 천왕봉가는 지리 주능선.

10 :06.밑에서 본 삼신봉과 추모비.
산이 좋아 산을 찾아
산이 좋아 산에올라
산이 좋아 산에누워
삼라만상 벗을삼네.

10 : 09/40. 삼신봉(1288m).정상표석과 제단이 있다.
삼신봉은 세곳이 있는데 보통 삼신봉 하면 이봉을 말하고 동측봉이 외삼신봉(1288.4m),서측봉이 내삼신봉(1354.7m)로
내삼신봉이 제일 높다.

10 : 09/40. 삼신봉(1288m)에서 본 내삼신봉(1354.7m.우측 뾰족봉).

10 : 09/40. 삼신봉(1288m)에서 본 외삼신봉(1288.4m).

10 : 09/40. 삼신봉(1288m)에서 본 지리 주능선의 덕평봉(좌)-영신봉-촛대봉(뾰족봉)-천왕봉(우).

10 : 09/40. 삼신봉(1288m)에서 본 지리 주능선 노고단(좌)-영신봉(우)과 낙남정맥길인 남부능선.

10 : 09/40. 삼신봉(1288m)에서 본 청학동마을.

청학동은 하동군 해발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삼신봉 남쪽자락으로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지리산 마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다.

전설로는 청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진곳으로 예로부터수많은 묵객들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살기 좋은 곳,
즉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바로 그런 곳이란 느낌이 들게하는 산세와 물줄기를 가지고 있다.
청학동이란 '푸른 학'이라는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청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면서 도술부리는 새로서 사람의 몸에 새의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청학하면 신선을 상징하고 신선하면 청학을 연상시켰다.

청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논밭에서 식량을 자급하고 양봉과 축산,약초,산나물등을 캐다 팔고 하동장에서 생필품을 구입해 쓰고있다.

이곳 주민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흰 한복 차림에 처녀 총각 어른은 머리를 땋아 댕기를 드리고
남자 어른은 상투를 틀고 여자 어른은 쪽지를 지며,한결같이 흰옷 도포를 입고 잊혀진 예생활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언젠가는 그 이상의 세상이 여기에 올 것이라는 미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청학동 마을에는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 이 서당에서는 청소년에게 한학과 예절등을 가르쳐주고 있으며,
우리의 오랜 옛 생활이 현대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청학동도 지금은 예전의 청학동이 아니고 도시화됐다.

삼신봉(1288m) 삼거리에서 본 외삼신봉.
청학동과 낙남정맥인 외삼신봉은 좌측으로 내려가고 내삼신봉,쌍계사,형제봉은 우측으로 간다..

11 : 12/20. 내삼신봉(1354.7m).정상표석과 2등 삼각점(운봉 27)이 있는 암봉이다.
중간에 있는 암봉은 좌측밑으로 우회하여 건너오며 삼신봉에서 내삼신봉까진 30여분 걸린다.

11 : 12/20. 내삼신봉(1354.7m)에서 본 지리 주능선과 남부능선.
우측끝이 천왕봉, 좌측끝은 덕평봉,가운데 뾰족봉이 촛대봉이다.

11 : 12/20. 내삼신봉(1354.7m)에서 본 삼신봉(표석뒤 낮은 암봉),우측 밋밋한봉이 외삼신봉.

11 : 12/20. 내삼신봉(1354.7m)에서 본 가야할 능선길.
가운데 둥근봉 우측 소나무잇는곳이 송정굴이고 좌측 저앞봉이 1301m봉 헬기장이며 그 좌측밑에 튀어나온 바위가 독바위다.

11 : 12/20. 내삼신봉(1354.7m)에서 본 청학동과 묵계제.

11 :23. 뒤 돌아 본 내삼신봉(1354.7m).

11 : 36.송정굴.
조선중기 학자였던 송정 하수일 선생이 임진왜란 당시 이 굴로 피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송정굴이라 부른단다.
여기서좌측으로 급경사를 내려간다.


12 :05. 쇠통바위.
1264m능선갈림봉을 지나좌측으로 꺽어가면 이정표(상불재 2.5km,세석 10km,쌍계사 6.5km,삼신봉 2.5km)가 나오고
좌측으로 거대한 바위군이있는데 하늘로 뚫린 구멍위로 올라가야 볼 수있다.

12 :05. 쇠통바위.
잠금쇠통 같다하여 쇠통바위라 부르며 열쇠저 열쇠구멍에 맞는 바위가 청학동 어디에 있다는 전설이 있단다.
저 뒷봉이 1301m봉이고 그 좌측 아래로 독바위가 보인다.

12 :05. 쇠통바위에서 본 내 삼신봉과 천왕봉.


12 :05. 쇠통바위에서 본 영신봉부터 이어지는 남부능선과 지리 주능선.


12 :05. 쇠통바위에서 본 외삼신봉과 고운동치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12 :05. 쇠통바위에서 본 청학동과 묵계제.

청학동 우측으로 삼성궁이 내려다 보인다.

삼성궁은 이 고장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시대의 소도를 복원,
민족의성조인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의 도장으로 자리잡아가고있다.
삼성궁 홈페이지. http://www.bdsj.or.kr/main//Untitled-41.htm


12 :05. 쇠통바위에서 본 선유동 계곡과 왕시리봉-노고단-반야봉.


1301m봉 가는길에 뒤 돌아 본 쇠통바위.

12 : 42. 1301m 독바위 갈림봉.
작은 헬기장에서 왼쪽 청학동 하산길로 내려가며 독바위가 나온다.(세석 10.7km,삼신봉 3.2km,쌍계사 5.7km)


독바위 원경.
가는길엔 곰출현주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전엔 이길이 출입금지구역으로 막혀 있었는데 지금은 열려있고 이런 현수막도 걸린것을 보니 풀린 모양이다.

12 : 48/13 :01. 독바위 .
보통 하동 독바위라 부르며 쑥밭재의 산청 독바위,노장대의 함양 독바위와 함게 지리산 3대 독바위로 불리는 바위다.


12 : 48/13 :01. 독바위에서 본 내삼신봉과 쇠통바위(좌측).
뒤는 지리 주능선의 촛대봉과 천왕봉.


12 : 48/13 :01. 독바위에서 본 외삼신봉.


12 : 48/13 :01. 독바위에서 본 청학동마을.
독바위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청학동마을의 황토민박앞으로 빠진다.


12 : 48/13 :01. 독바위에서 본 내원재 단풍.


12 : 48/13 :01. 독바위에서 본 시리봉과 형제봉으로가는 남부능선.
지리산 남부능선이란 영신봉에서 삼신봉,내삼신봉,내원재를거쳐 형제봉에 이르는 100여리의 능선을 말한다.

상불재로 하산길에 뒤 돌아 본 독바위.
매바위라 부르는데 더 어울릴듯싶다.

상불재위 전망바위에서 본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일부지도는 상불재를 저 능선안부로 표기하고 있는데 잘 목 표기한 것이다.
상불재는 삼신봉에서 형제봉가는 주능선이 아닌 쌍계사쪽으로 가는 지능선에 있다.
남부능선주능선에서 형제봉쪽으로가는 주능선은 나무로 막아놨다.

상불재위 전망바위에서 본 쌍계사쪽모습.
상불재에서 쌍게사 하산길은 앞 줄기 우측 계곡으로 이어지고 앞줄기끝에 불일폭포가 있다.

13 : 33. 상불재 삼거리.
좌측은 청학동길. 직진길이 쌍계사 길.(쌍계사 4.9km,삼성궁 2.3km, 삼신봉 4.1km).
청학동길은 산허리를 돌아가서 남부능선주능선을 넘어가면 삼성궁앞으로 빠진다.
쌍계사길은 능선길을 잠깐 가다 바로 우측 계곡으로 내려간다.

상불재 내림길은 이런 너덜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상불재 내림길 계곡의 단풍.

14 : 05.계곡길.상불재에서 30분을 내려왔는데 겨우 0.7km왔다. (삼신봉 4.8km,쌍계사 4.1km).

낙엽송 조림지를 지나면 돌길은 좀 나아진다.

14 : 54. 불일폭포 입구.(불일폭포 0.3km,삼신봉 6.9km,쌍계사 2.1km).
불일폭포는 좌측으로 한굽이 돌아 올라가야한다.10여분 걸린다.


15 : 04. 불일폭포.
높이 60m, 폭3m의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거폭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 폭포이며,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연중 단수의 고갈은 없다

이 폭포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살짝 처서 청학봉(靑鶴峰),백학봉(白鶴峰)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熙宗: 재위 1204-1211년)때 보조국사 지눌(智訥: 1158-1210년)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했는데
입적(入寂)하신후 희종은 시호를"불일보조(佛日普照)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라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다.


15 : 04. 불일폭포.
전에는 저 아래까지 내려갔으나 지금은 전망대 테크를 만들어서 훼손을 막고 있다.


15 : 14/24. 불일암.
보조국사 지눌(智訥: 1158-1210년)이 수도하던 암자가 불일암인데 이터가 그터인진 모르겠다.
대웅전 우측의 시원한 물이 좋다.


15 : 14/24. 불일암 앞계곡.

15 : 14/24. 불일암 앞계곡.

15 : 32. 다시 불일폭포입구 아래의 불일평전.

15 : 32. 다시 불일폭포입구 아래의 불일평전의 돌탑들.


16 : 08. 쌍계사 불일폭포 들머리.


쌍계사.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는 범패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梵唄)를 만들어냈으며,
오랫동안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팔영루라는 이름도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쌍계사 홈피.
http://www.ssanggyesa.net/

16 : 10. 쌍계사 대웅전과 진감선사비.
대웅전(보물 500호)은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초창한 이래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 각성스님의
중수, 숙종 21년(1696년) 백암 성총스님의 중수, 영조 11년(1735년) 법훈스님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에는 세분의 부처님이 계신데 중앙이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이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 기와집이다. 막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 3출목 내 3출목으로 기둥위는 물론 기둥사이
평방위에도 짜올린 다포식이다. 첨차는 교두형이고 살미첨차의 바깥끝은 쇠서로 되었고, 안쪽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건실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다.

16 : 10.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47호.
이 비는 신라 정강왕이 신라말의 고승 진감선사 혜소(774년-850년)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玉泉寺)를 쌍계사(雙磎寺)로 명명하고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857-?)이 비문을 짓고 환영스님이 각자하여
887년에 건립되었다. 대사의 속성은 최씨이고, 시호는 진감선사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애장왕(哀莊王)5년
(804년) 불도를 닦으러 당나라에 들어가 신감대사 (마조도일의 80대 제자로 남종선의 선사)밑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후 숭산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다시 종남산에 들어가 3년간 더 도를 닦았다.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하여
상주(尙州) 모악산 장백산(長栢山)에서 선을 가르쳤다. 다시 지리산 화개곡에 들어가 옥천사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대사는 범패에 능하여 그 맑은 소리로써 대중을 널리 교화하였음은 유명하다.

비문의 자경은 2.3cm의 해서이다. 이 탑비는 귀부와 이수 및 비신을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가운데 하나이다. 귀부의 등에는 간결하게 귀갑문이 조각되었으며 귀두는 용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귀갑의 중앙에는 방형의 비좌가 마련되어 비신을 받게 되었는데 네면에 운문(雲紋)이 양각되어 있다. .

16 : 12. 팔영루와 9층석탑.

팔영루(八詠樓)
이 곳은 우리나라 불교 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774년-850년)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梵唄)을 만든 불교 음악의 발상지이며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어산(魚山)범패를 작곡했다고 해서 팔영루라고 한다. 신라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인조19년(1641년) 벽암 스님이 중수한 후 1978년 고산스님이 완전히 중수하였다.

구층석탑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三顆)와
산내 암자인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二顆)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一位)를 모셨다.
때마침 발심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시주로 불기 2531년(1987년) 1월 3일 시공하여 불기 2534년(1990년) 3월 15일
완공하였다.

16 : 14.쌍계사일주문,금강문,천왕문.


맨앞 삼신산 쌍계사 일주문.
속세를 떠나 불도에 들어서는 첫째 관문으로서 양쪽에 기둥 하나씩을 세워 만들었다 하여 일주문이라 하는데
항상 한마음 한뜻으로 수도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벽암스님이 조선 인조 19년(1641년)에 조성하였고
1977년 고산스님이 중수하였다. 건축양식은 다포식(多包式)으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데
내외4출목(內外四出目).으로 되어 있다. 공간포(空間包)에는 정면에 3구, 측면에는 2구가 놓여져 포(包)간격은
일정하다. 기둥위에는 주두(柱頭)가 없이 창방(昌枋), 평방(平枋)위에 대접 받침을 놓고 포를 설치하였다.

가운데 금강문.
이 문은 신라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창건하였고,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스님이
중창, 1979년 고산스님이 중수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양측 박공에는 풍판(풍판)을 달았다. 정면 어간(어간)을 개방하고 양측간(양측간)을
벽체로 막아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사천왕문)의 일반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문안에는
금강역사(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금강역사는 부처님과 불법, 스님들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여
불교를 수호하고 악(악)에 철퇴를 내리는 천신(천신)이다.
왼쪽에 계신 분이 '밀적금강(밀적금강)',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나라연금강)'이다.
'금강문'이라는 편액의 글씨는 벽암스님의 글씨이다.

맨 안쪽 천왕문.
천왕문은 사천왕(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천왕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들과
선인(선인)을 돕는 네 분의 신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주를 다스리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주를 다스리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의 네 분이다.
신상(신상)은 목조이며 뛰어난 조성법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조선 숙종30년(1704년) 백봉스님이
창건하였고 순조25년(1825년) 인정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그 뒤 1978년 고산스님이 다시 중수하였다. 건축양식은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익공식(翼工式)이며, 금강문과 같이 양측 박공면에는 풍판(풍판)을 달았으며
중앙 어간(어간)은 개방하고 양측간은 벽체로 마감하였다.

구례역-구례터미널 버스시간표.

구례역 기차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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