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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한양도성길

한양도성 순성길 1. (혜화문-백악산-인왕산-숭례문).

한양도성 순성길 1. (혜화문-백악산-인왕산-숭례문).

 

◈ 구간 거리 및 소요시간 : 12.3km(6시간 28분).

 

◈ 일시 : 2021. 10. 08 (금).

 

◈ 지도.

 

 

◈ 트랙.

도성길1(혜화문_ㅡ백악산-인왕산-숭례문).gpx
0.0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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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정정리.

 

06 : 29. 천안 봉명역에서 서울역행 급행전철로 출발.

08 : 43.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여 한성대입구역 4번출구.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혜화동쪽으로 간다. 5번출구 엘레베이터를 타고 나가면 될것을 그랬다.

08 : 49. 혜화문(동소문). 문앞에 올랐다 내려와 성벽밑 도로를 따라 간다.

08 : 56.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 쎈터. 얫 서울시장 공관였던곳을 전시장과 카페로 만들었다.

09 : 12. 서울과학고.정문을 지나 도로 좌측의 성벽길로 올라간다.

09 ; 24. 우측 북정마을로 가는 암문에서 직진해 계단을 올라간다.

09 : 36/52. 와룡공원. 정자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앞은 군부대라 성밖길로 나가 성밑길을 따라간다.
전 서울시장 박원순씨가 자살했다는 공원으로 차가 여기까지 올라 올 수 있다.

09 : 57. 우회길 안내판을 따라 우측 밑으로 내려갔다 돌아서 올라간다. 취병(翠屛)안내판.

10 : 08. 우회끝. 전망대. 날이 흐려 구진봉과 삼청각만 겨우 보인다.
좌측에 있는 207.9m삼각점과 말바위 전망대를 보고 되돌아 온다.

10 :12. 삼청공원 말바위. 서울시선정 우수조망처라는데 남산과 북악산(백악산)만 겨우 보인다.

10 : 23. 말바위 안내소. 출입허가용 패찰을 받아 목에 걸다.2007.4.5일에 와룡공원-백악산-창의문구간 개방.

10 : 29. 숙정문(肅靖門. 북대문). 솔숲이 좋다.

10 ; 39. 백악촛대바위. 촛대모양이 안나온다.

10 ; 49. 백악곡장 전망대. 백악과 인왕산 조망. 족두리봉부터 보현봉까지 잘 보인다는데 오늘은 꽝.
삼거리길에서 우측 위로 40m 올라가야 한다.이슬비가 내린다.

10 : 57.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온 화장실앞 넓은공터의 조망명소 안내판. 비가 와서 조망은 제로.

11 ; 04. 급경사 계단을 올라온 청운대(293m)표지석.우측 성곽밖으로 내려가는 데크길이 있다.

11 : 08. 총맞은 121사태 소나무. 다시 한번 급경사 계단을 올라간다.

11 : 14. 백악산(. 북악산.342.5m). 진지가 있던곳을 복원 했단다.

11: 35. 자북정도(紫北正道) 표지석.

11 ; 41. 길고긴 계단길을 내려간 창의문 안내소. 출입허가용 패찰을 반납한다.바로앞에 창의문.

11 : 45. 창의문(彰義門. 자하문. 북문). 문루는 1741년 영조때 다시 세운것으로
인조반정때 이문으로 들어온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었다.
창의문으로 해서 도로 위로 건너가는 구름다리가 있으나 점심을 먹으러 우측으로 나간다.

11 : 50/12 : 21. 부암동 주민쎈터 버스정류장앞 부암식당에서 된장찌게로 점심을 먹고
비가 와서 우산을 사들고 구름다리밑을 지나 우측 계단으로 올라간다.

12 : 28.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의 "서시" 비석.

13 ; 31. 정자를 지나 도로를 건너 인왕산입구.인왕산 안내도.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간다.

12 : 47. 뿌리가 붙은 연리지 부부소나무.

13 : 00. 우측 홍지문, 탕춘대암문으로 가는 성벽이 갈리는곳으로  성밖으로 기차바위 260m 하산길.

13 ; 12. 치마바위옆을 올라 인왕산(339.9m)정상. 바위위에 있는 삼각점은 서울 467. 1994복구.

13 : 19.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겨울엔 이곳이 제일 어려운 구간일듯.

13 ; 26. 범바위. 아무런 표식이 없다.

13 : 30. 우측 무악재. 안산가는 능선의 인왕산곡성은 군부대가 있어 들어 갈 수 없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13 : 34. 우측으로 성벽을 나가는 인왕산 자락길. 조금 내려가면 안산. 선바위.모자바위. 부처바위가 보인다.
13 : 43. 도로를 건너 코스모스길을 간다. 인왕산자락길과 한양도성외부순성길 이정표.

13 ; 52. 운동기구와 사직전망대. 나무에 가려 전망은 제로. 우측으로 선바위 무악재 구름다리 가는 암문.

13 : 57. 비를 피할수 있는 인왕산 순성안내쉼터에서 휴식. 앞 도로엔 편의점. 좌측에 종로문화체육쎈터.

14 ; 15. 월암공원."어니스트 베델 집터"가 나오기 직전 빌라촌에서 우측으로 가야 홍난파가옥일텐데 뒤로 왔다.

14 : 22. 국립기상박물관. 서울시민대학. 서울시교육청.

14 : 34. 삼성병원안 응급실옆에 있는 경교장. 길건너편은 돈의문 박물관마을.

14 : 37. 네거리 건너 돈의문터. 한성도성의 서대문인데 1915년 일본이 도로확장때 철거.

14 : 48. 정동교회. 520년생 회화나무보호수. 이화여고.덕수궁증명전.외교타운. 정동극장을 지나왔다.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덕수궁 돌담길이고 정동교회를 우측에 끼고 러시아대사관앞을 지나
배재학당뒤 배재공원을 지나 조성중인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난다.

14 : 56. 서소문로 큰길 건너가 소의문 터인데 바로 건너갈 수없어 우측 아래로 길게 돌아 올라간다.

15 : 01. 소의문 터(서소문 터). 四小門중 하나. 1914년 일제가 철거.

15 : 08. 숭례문앞. 오늘 일정을 여기서 마치고 우측 서울역으로

15 : 11. 서울역3출구.

15 : 38. 서울역에서 천안행 전철급행.

17 : 28. 천안역도착.

 

 

06 : 29. 천안 봉명역에서 서울역행 급행전철로 출발.

08 : 43.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여 한성대입구역 4번출구.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 혜화동쪽으로 간다. 5번출구 엘레베이터를 타고 나가면 될것을 그랬다.

우측 길 건너 저앞에 혜화문이 보인다.

 

08 : 49. 혜화문(동소문). 문앞에 올랐다 내려와 성벽밑 도로를 따라 간다.

한양도성(사적 제10호)은 서울의 도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네개의 산(백악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능선을 따라
평지,산지 및 구릉지 구간을 연결하여 1396년 전국의 백성 약 20만명을 동원하여 단 98일 만에 구축한 18.6km의
거대한 도시 성곽으로 4대문(숭례문(남대문). 홍인지문(동대문). 숙정문(북대문). 돈의문(서대문.터만남았다))과
4소문(혜화문(동소문).창의문(북소문). 소의문(터만남았다). 광희문)과 2개의 수문, 2개의 곡성을 설치했다. 

혜화문(惠化門)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1511)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문루가 없던 것을 영조 때에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 본래 자리보다 북쪽에 새로 지었다.

 

여기서 좌측 70m에 안내쎈터.

 

08 : 56.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 쎈터. 얫 서울시장공관였던곳을 전시장과 카페로 만들었다.

직원은 아직 출근전이고 청소부만 나와서 주변 청소를 하고있다. 팜프렛 챙겨넣고.

 

 

 

 

여긴 성벽위에 빌라를 지었고.

 

구진봉과  우측 뒤로 보현봉.

 

09 : 12. 서울과학고.정문을 지나 도로 좌측의 성벽길로 올라간다.

 

 

 

 

09 ; 24. 우측 북정마을로 가는 암문에서 직진해 계단을 올라간다.

암문을 나가서  본 북정마을.

북정마을

와룡공원 옆으로 도성 안쪽 길을 따라 걷다보면 성북동으로 빠지는 암문이 나온다.

문 밖에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이 바로 북정마을이다. 북정마을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던 심우장'성북동 비둘기'를 지은 김광섭 시인의 집이 있었다.

성벽 밑에 5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09 : 36/52. 와룡공원. 정자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앞은 군부대라 성밖길로 나가 성밑길을 따라간다.
전 서울시장 박원순씨가 자살했다는 공원으로 차가 여기까지 올라 올 수 있다.

우측 성북동.

 

군부대앞에서 우측 성밖으로 나간다.

 

성밖에서 본 올라온쪽.

 

성벽밑을 따라간다.

 

09 : 57. 우회길 안내판을 따라 우측 밑으로 내려갔다 돌아서 올라간다. 취병(翠屛)안내판.

취병

취병은 관목류, 덩굴성 식물 등을 심어 가지를 틀어 올려 병풍모양으로 만든 울타리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밖에서 내부가 직접 들여다 보이는 것을 방지하고 공간을 분할하는 역할을 하면서 경관을 조성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林園十六志의 관병법에는 취병의 소재와 방법이 나와 있다. 취병용 수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상록수로 대나무, 향나무, 주목, 측백, 사철나무 등과 고리버들, 화목류, 등나무 같이 가지가 연한 수종이 가능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10 : 08. 우회끝. 전망대. 날이 흐려 구진봉과 삼청각만 겨우 보인다.
좌측에 있는 207.9m삼각점과 말바위 전망대를 보고 되돌아 온다.

구진봉(우(과 삼청각(맨앞). 팔각정(좌).

삼청각(三淸閣)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2~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었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에는 손님이 줄어들어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9912월에 문을 닫았다.

2000년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새롭게 단장한 삼청각은 공연장, 한식당, 찻집, 객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연중 전통공연이 열리고 혼례나 약혼식 장소로도 사용되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 있다.

 

성북동뒤로 수락산이 보인다는데...

백악산(북악산.좌)과 백악곡장(우).

 

10 :12. 삼청공원 말바위. 서울시선정 우수조망처라는데 남산과 북악산(백악산)만 겨우 보인다.

말바위.

 

말바위 안내소와 우수조망명소

말바위는 삼청공원 안에 있는 바위로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백악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여서 말()바위라 하였다고도 하고,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전에 이 바위에 말을 매어 두어 말()바위가 되었다고도 한다.

동쪽 능선을 따라 백악에 오를 때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을 매어 두는 바위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수조망명소는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에서는 성북구 방향이, 다른 한 곳에서는 종로구 방향이 보인다.

우수조망명소는 숙정문 안내소 · 말바위 안내소 · 삼청공원 ·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들이 갈라지는 분기점이기 때문에 안내표지판을 잘 확인해야 한다.

창의문·숙정문·말바위 안내소와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다.

 

말바위에서 남산.

 

말바위에서 북악산(백악산. 우)과 인왕산(중). 안산  좌측뒤.

 

 

10 : 23. 말바위 안내소. 출입허가용 패찰을 받아 목에 걸다.2007.4.5일에 와룡공원-백악산-창의문구간 개방.

숙정문 가는길.

 

10 : 29. 숙정문(肅靖門. 북대문). 솔숲이 좋다.

밖으로 나가 본 그림.

숙정문 ; [ 肅靖門 ]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다.

1396(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숙청문이 숙정문으로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중종 18)이다.

숙정문 외에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옆모습.

 

뒤돌아 본 모습.

 

솔숲이 좋다.

 

10 ; 39. 백악촛대바위. 촛대모양이 안나온다.

백악 촛대바위.

 

 

10 ; 49. 백악곡장 전망대. 백악과 인왕산 조망. 족두리봉부터 보현봉까지 잘 보인다는데 오늘은 꽝.
삼거리길에서 우측 위로 40m 올라가야 한다.이슬비가 내린다.

백악곡장(곡성이라고도 한다).

백악 곡성

곡성(曲城)은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하는데

인왕산과 백악에 하나씩 있다.

이 중 백악 곡성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는데 도성을 둘러싼 서울의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꼽힌다.

백악곡장에서 조망도.

오늘은 비가 와서 조망은 요모양.

 

백악곡장에서 본 북악산(좌)과 인왕산(우).

 

여장과 치.

 

백악곡장에서 본 구진봉.

 

10 : 57.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온 화장실앞 넓은공터의 조망명소 안내판. 비가 와서 조망은 제로.

요렇게 보여아 하는데..

 

뒤돌아 본 백악곡장과 뒤로 구진봉.

 

11 ; 04. 급경사 계단을 올라온 청운대(293m)표지석.우측 성곽밖으로 내려가는 데크길이 있다.

 

11 : 08. 총맞은 121사태 소나무. 다시 한번 급경사 계단을 올라간다.

 

 

백악산정상직전 삼거리서 뒤로 본 백악곡장.

 

삼거리서 구기동뒷쪽 탕춘대암문능선과 그뒤로 족두리봉.

 

11 : 14. 백악산(. 북악산.342.5m). 진지가 있던곳을 복원 했단다.

백악마루

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白岳山 海拔 342m’라고 적힌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 서면 경복궁과 세종로는 물론 한강 건너 63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 성을 쌓을 때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눴는데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으니 시작 구간은 천(), 끝나는 구간은 조()였다. 이곳이 바로 천() 구간에 해당한다.

북악산(北岳山)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40m), 남쪽의 남산(南山, 270m), 동쪽의 낙산(駱山, 124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창의문 내려가는길.

 

부암동. 홍은동과 뒤로 탕춘대암문능선과 우측 맨뒤로 족두리봉-향로봉능선.

 

내림길 중간에 백악쉼터도 지나고

인왕산.

 

11: 35. 자북정도(紫北正道) 표지석.

 

11 ; 41. 길고긴 계단길을 내려간 창의문 안내소. 출입허가용 패찰을 반납한다.바로앞에 창의문.

좌측 상단 나무있는곳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 가운데 교회탑있는곳은 가지않고 가운데 뒷봉이 인왕산.

 

11 : 45. 창의문(彰義門. 자하문. 북문). 문루는 1741년 영조때 다시 세운것으로
인조반정때 이문으로 들어온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었다.
창의문으로 해서 도로 위로 건너가는 구름다리가 있으나 점심을 먹으러 우측으로 나간다.

창의문 ; [ 彰義門 ]

북문(北門) 또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린다.

1396(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창건되어 창의문이란 문명(門名)을 얻었다.

북한(北漢) ·양주(楊州) 방면으로 통하는 교통로였으나

1416(태종 16) 풍수지리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 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閉門)한 채 일반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1506(중종 1)에 다시 열어놓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는 능양군(陵陽君:인조)을 비롯한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문루(門樓)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0(영조 16) 다시 세우고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다. 1958년 크게 보수하였으며, 정면 4,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서울 사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이다. 2015122일에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다.

 

우측 밖으로 나가야 창의문 현판을 볼 수있다.

 

11 : 50/12 : 21. 부암동 주민쎈터 버스정류장앞 부암식당에서 된장찌게로 점심을 먹고
비가 와서 우산을 사들고 구름다리밑을 지나 우측 계단으로 올라간다.

창의문에서 자하문도로를 건너가는 육교.

 

요리로 올라간다. 뒤에 보이는 산은 백악산(북악산).

 

근처 볼거리들.

 

12 : 28.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의 "서시" 비석.

우측 큰 바위가 서시시비.

 

13 ; 31. 정자를 지나 도로를 건너 인왕산입구.인왕산 안내도.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간다.

뒤 돌아 본 북악산과 백악곡장.

 

 

12 : 47. 뿌리가 붙은 연리지 부부소나무.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하얀 가림막에 그려진 그림.

 

 

 

13 : 00. 우측 홍지문, 탕춘대암문으로 가는 성벽이 갈리는곳으로 성밖으로 기차바위 260m 하산길.

기차바위.

 

치마바위와 인왕산 정상모습.

치마바위 상단에서 뒤 돌아 본 기차바위(뒤).

 

13 ; 12. 치마바위옆을 올라 인왕산(339.9m)정상. 바위위에 있는 삼각점은 서울 467. 1994복구.

인왕상정상.

인왕산(仁王山)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인왕산정상에서 안산(우).

 

13 : 19.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겨울엔 이곳이 제일 어려운 구간일듯.

인왕산바위구간을 내려오며 본 범바위(좌)와 뒤로 인왕산곡성.

인왕산바위구간을 내려오며 본 범바위(좌)와 뒤로 인왕산곡성.

 

안산.

 

범바위.

 

범바위에서 인왕산.

 

13 ; 26. 범바위. 아무런 표식이 없다.

범버위.

 

범바위에서 인왕산.

 

범바위에서 인왕산 곡성과 그 우측 뒤로 안산.

 

13 : 30. 우측 무악재. 안산가는 능선의 인왕산곡성은 군부대가 있어 들어 갈 수 없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인왕산곡성앞에서 본 사직동으로 내려가는 성벽모습.

 

 

13 : 34. 우측으로 성벽을 나가는 인왕산 자락길. 조금 내려가면 안산. 선바위.모자바위. 부처바위가 보인다.

인왕산

곡성끝에 있는 부처바위(맨좌측).

 

선바위-모자바위(?)-부처바위. 가운데 뒤로 안산.

땡겨 본 선바위위와 안산.

 

 

뒤 돌아 본 인왕산과 인왕산 곡성.

 

13 : 43. 도로를 건너 코스모스길을 간다. 인왕산자락길과 한양도성외부순성길 이정표.

인왕산을 또 돌아보고.

 

13 ; 52. 운동기구와 사직전망대. 나무에 가려 전망은 제로. 우측으로 선바위 무악재 구름다리 가는 암문.

 

 

13 : 57. 비를 피할수 있는 인왕산 순성안내쉼터에서 휴식. 앞 도로엔 편의점. 좌측에 종로문화체육쎈터.

편의점 우측 골목으로 내려간다.

 

좌측에 보이는 종로문화체육썬터.

 

14 ; 15. 월암공원."어니스트 베델 집터"가 나오기 직전 빌라촌에서 우측으로 가야 홍난파가옥일텐데 뒤로 왔다.

 

 

 

14 : 22. 국립기상박물관. 서울시민대학. 서울시교육청.

 

14 : 34. 삼성병원안 응급실옆에 있는 경교장. 길건너편은 돈의문 박물관마을.

앞으로 돌아가면.

 

2001년 4월 6일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6월 13일에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승만의 이화장(梨花莊),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건국 활동의 중심을 이룬 3대 요람이다.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崔昌學)이 건축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었으며,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8·15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건물은 단아한 2층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우며, 1층의 좌우창을 원형으로 돌출시켰고, 그 상부를 의장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부에는 6개의 붙임 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창을 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또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고 다시 타이완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삼성재단에서 매입하여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어왔다. 이후 서울시에서 소유는 그대로 두되 전체 공간을 복원하기로 합의해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하였다. 이는 2013년 3월 2일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경교장. 문을 닫았다.

 

응급실옆 누런건물이 경교장이고 건물을 좌측으로 돌아가면 입구가 있고 바로옆이 삼성병원본관이다.

 

14 : 37. 네거리 건너 돈의문터. 한성도성의 서대문인데 1915년 일본이 도로확장때 철거를 해서 터만 남았다.

돈의문 터 (敦義門)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태종 13(1413)에 만들어진 서전문(西箭門)이 서대문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그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종 4(1422)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서전문을 닫고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현재 돈의문 터가 그 위치이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라는 지명도 이에서 유래한다. 1915년 일제는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여 건축자재로 매각하였다. 현재 돈의문 터에는 공공 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돈의문터에서 네거리 뒤로 본 삼성병원(우측 두버째 파란색건물)과 돈의문박물관마을(우측 검은건물)

 

520살(1976지정)된 회화나무.

 

 

 

이화여고.

 

 

14 : 48. 정동교회. 520년생 회화나무보호수. 이화여고.덕수궁증명전.외교타운. 정동극장을 지나왔다.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덕수궁 돌담길이고 정동교회를 우측에 끼고 러시아대사관앞을 지나
배재학당뒤 배재공원을 지나 조성중인 아펜젤러기념공원을 지난다.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건물 뒤의  배재공원입구.

 

 

14 : 56. 서소문로 큰길 건너가 소의문 터인데 바로 건너갈 수없어 우측 아래로 길게 돌아 올라간다.

 

 

15 : 01. 소의문 터(서소문 터). 四小門중 하나. 1914년 일제가 철거.

 

15 : 08. 숭례문앞. 오늘 일정을 여기서 마치고 우측 서울역으로

숭례문(崇禮門)

<국보 제1> 한양도성의 남대문이자 정문이다. 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 완공하였고, 1448년에 개축하였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20082월 화재로 목조인 1층 약 10%, 2층 문루 약 90%가 소실되었다가 20135월 복구되었다. 이때 숭례문 서쪽 16m, 동쪽 53m의 성벽을 연결하였다.

* 숭례문 현판 :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달리 숭례문의 예()가 사람을 바로 세우는 덕목이라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15 : 11. 서울역3출구.

 

15 : 38. 서울역에서 천안행 전철급행.

17 : 28. 천안역도착.